동쪽으로는 담양군과 화순군, 서쪽으로는 광산구, 남쪽으로는 서구와 동구, 북쪽으로는 담양군과 장성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01'∼126°50', 북위 36°06'∼35°15'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120.30㎢, 인구는 44만 631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7개 행정동(41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77(용봉동)에 위치해 있다.
북구의 동쪽은 비교적 높은 산악지대이며 서쪽은 영산강과 이어지는 평야지대를 이룬다. 무등산을 경계로 전라남도 화순군과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광주천, 서쪽으로는 영산강을 끼고 있다.
북구의 지형은 백두대간에서 서남쪽으로 휘감아 뻗은 호남정맥의 중간쯤에 우뚝 솟아있는 무등산 자락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상 천왕봉(1187m)에서 왼쪽으로 내린 능선은 장원봉(368m)을 지나 작고개를 거쳐 문화동의 동쪽 울타리인 대봉(300m)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뻗어 내린 자락은 버성골로 이어진다. 이 사이에 덕봉산(422m)으로 내린 능선이 있다.
장원봉이나 덕봉산 사이에는 무등산 장군봉에서 흘러내려 4수원지로 들어가는 석곡천이 있고 덕봉산 능선과 버성골 사이에는 원효계곡으로 광주호로 이어지는 증암강이 있다. 대봉 산줄기는 도동고개를 넘어 월각산(삼각산, 274m)을 거쳐 생룡동의 대포리봉(250m)으로 이어진다.
대포리봉에서 이어진 능선은 우치공원 뒷산인 잘산봉(171m)에서 고도가 낮아져 동림동 대마산에 이르러 영산강과 만난다. 대봉자락에서 발원한 서방천(두암천), 삼각산에서 나온 오치천, 잘산봉에서 흘러온 용봉천 등은 남류하여 무등경기장 서편에서 광주천과 만난다.
황해 연안을 흐르는 제주해류(황해해류) 및 남서쪽에서 이동해 오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온난하고 강수량이 많으며, 전남평야와 노령산지의 경계지대에 위치하여 양 지역의 점이형(漸移型)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은 13.6℃이며, 1월 평균기온 -0℃, 8월 평균기온 26.1℃로 연교차(年較差)는 26.2℃이다. 강수량은 연중총량 1289㎜로 3∼5월에 18%, 6∼9월에 59%의 비가 내리며, 연강수일수는 133일 정도이다.
바람은 북서풍과 서풍이 많으며, 여름철에는 남동쪽을 가로막고 있는 무등산지의 영향으로 남풍과 서풍이 많다. 계절풍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겨울에는 북서계절풍, 여름에는 남서계절풍이 분다.
운암동, 우치동, 충효동, 청옥동, 망월동 등에서 발굴된 유적 · 유물들은 구석기 말기부터 신석기 ·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 영산강 유역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북구 지역은 삼한시대 마한의 영역이었으며, 마한에는 50여 개의 소국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중 전남지방에 13개 정도의 소국이 있었다는데, 이 지역도 그 중의 한 소국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에는 무진주라고 불렸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주(武州)로 불렸다. 892년에 견훤이 이곳에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 해양현이 되었고, 고종 때 무진주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1310년 화평부로 강등되었으며, 1361년 무진부가 되었다가, 1373년(공민왕 22)에 광주목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무진군, 광주목, 광산현 등 강등과 승격을 거듭하여 1892년 광주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 광산군은 15면 152리로 통 · 폐합되었다. 북구 지역은 석곡면, 우치면, 본촌면, 서방면과 극락면 일부 등으로 통 · 폐합되었다. 1931년 10월 지정면인 광주면이 광주읍으로 승격되었고, 1935년 4월 1일에 북구에 속한 서방면 3개리(장호, 동계, 풍향리)와 극락면 일부(신연, 내방, 운암리)가 광주읍에 편입되었다. 1935년 10월 1일 광주읍이 부로 승격되고 광주군은 광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이때 북구 지역인 서방면 풍향, 장호, 동계, 중흥, 신안리 등이 광주부에 편입되었다.
해방 후인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광주부가 광주시로 개칭되었고 행정구역 변경으로 석곡면의 일부인 화암리, 청풍리, 망월면의 장등리, 운정리, 극락면의 운암리, 동림리가 광주시에 편입되었다.
1957년 12월 2일자로 북구 지역에 석곡출장소(충효동, 청옥동, 장운동)와 지산출장소(우치동, 본촌동, 삼소동)가 설치되었다. 1961년 3월 10일자로 석곡출장소와 효죽동, 문화동, 서산동을 포함하여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7월 1일 구제가 실시되어 북구 지역이 동구와 서구로 분할되었으며, 석곡과 지산출장소가 24개 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1979년 9월 26일 「북구청설치령」에 의해 1980년 4월 1일 동구 관할의 중흥1·2동, 석곡출장소 8개 동, 동구 관할의 지산출장소 3개 동, 유문동, 누문동, 북동, 임동, 동운동, 태봉동 등이 통합되어 중흥동 701-10번지에 북구청이 개청되었다.
1982년 9월 1일 중흥2동이 중흥2·3동으로, 운암동이 운암1·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3년 1월 4일 운암동으로 청사를 이전했다가 1985년 9월 23일 현재의 청사인 우치로 77(용봉동 239-2번지)로 이전하였다.
1994년 7월 1일 서산동이 서산동과 오치동으로, 1995년 3월 1일에 문화동이 문화동과 문흥동, 두암1동이 도암1동과 두암3동으로 분동되었고, 1996년 1월 9일 문흥동이 문흥1동과 문흥2동으로 분동되었다. 1997년 3월 1일 북동 · 누문동 · 유동이 중앙동으로, 풍향1동 · 풍향2동이 풍향동으로, 오치동이 오치1동과 오치2동, 서산동이 서산동과 매곡동으로, 동운3동이 운암3동과 동림동으로 분동되었다. 동운1·2동은 운암1·2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8년 9월 21일 청옥동, 충효동, 장운동이 석곡동으로,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 건국동으로 통 · 폐합되었으며, 2003년 7월 7일 서산동이 삼각동과 일곡동으로 분동되었다.
북구 지역의 문화유산으로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유산으로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962년 지정), 나주 신촌리 고분출토 금동관(국보, 1997년 지정), 정지 장군 갑옷(보물, 1963년 지정), 충효동 도요지(사적, 1964년 지정), 김덕령 장군 의복, 장흥임씨묘 출토복식, 고운묘 출토유물 등 7점이 있고, 김덕령 장군 의복과 장흥임씨묘 출토복식은 1980년, 고운묘 출토유물은 2001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지정 유형문화유산으로 광주 십신사 지석불, 광주 십신사지 석비, 원효사 동부도, 원효사 출토유물, 원효사 소장 만수사범종, 김용학 가옥, 강진 김해김씨가상여, 광산노씨 분묘출토 명기류, 이신의 종가 소장 고문서, 눌재집 목판각, 사암집 목판각, 전라남도 회의실 신축설계도 등 9점이 있다. 광주 십진사 지석불, 광주 십신사지 석비, 원효사 동부도는 1986년, 원효사 출토유물은 1987년, 원효사 소장 만수사범종은 1989년, 이신의 종가 소장 고문서는 1998년, 눌재집 목판각과 사암집 목판각은 1990년, 전라남도 회의실 신축설계도는 1997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김용학 가옥과 강진 김해김씨가상여는 1989년, 광산노씨 분묘출토 명기류는 1990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밖에 무형유산은 남도 판소리(심청가), 남도 의례 음식장, 가야금 병창 등이 있으며, 남도 판소리(심청가)는 1974년, 남도 의례 음식장은 2002년, 가야금 병창은 2005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념물은 환정지 장군 예장 석묘(광주광역시 기념물, 1975년 지정), 전상의 장군 예장 석묘(광주광역시 기념물, 1977년 지정), 충효동 정려비각(광주광역시 기념물, 1985년 지정), 무진 고성지(광주광역시 기념물, 1989년 지정), 충효동 왕버들(천연기념물, 2012년 지정), 금곡동 제철유적(광주광역시 기념물, 1994년 지정), 광주 북동 천주교회(광주광역시 기념물, 1999년 지정), 광주 학생운동 발상지(광주광역시 기념물, 1999년 지정) 등이 있다. 환벽당은 2013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문화유산자료는 풍암정, 김봉선 유품, 분청사기 전라도 명항아리 등이 있다. 풍암정과 김봉선 유품은 1990년, 분청사기 전라도 명항아리는 1998년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북구 지역의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46개교, 중학교 27개교, 고등학교 21개교, 특수학교 2개교, 동강대학교, 서영대학교, 광주교육대학교, 광신대학교, 전남대학교가 있다. 도서관은 광주무등도서관과 일곡도서관이 있다.
의료시설로는 종합병원 3개, 병원 8개, 의원 229개, 특수병원 1개, 치과병원 126개, 한방병원 115개, 한의원 64개, 부속의원 2개, 조산소 2개, 보건소 1개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아동복지시설인 광주애육원과 여성복지시설인 광주나사렛쉼자리가 있다.
체육시설 중 경기장 시설은 종합경기장인 무등경기장에 종합운동장, 야구장, 수영장이 있으며, 실내체육관 3개, 테니스장 1개, 수영장 2개 등이 있다. 신고체육시설은 수영장 5개, 볼링장 5개, 테니스장 2개, 골프연습장 16개 등이 있다. 공원은 자연공원인 무등산도립공원이 있고 도시공원은 121개로 어린이공원 99개소, 근린공원 19개소, 묘지공원이 3개소가 있다.
북구는 광주의 문화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비엔날레관, 광주문화예술회관, 광주시립미술관이 중외공원문화벨트 안에 모여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1978년에 개관하여 국보 2점을 비롯한 4만 3802점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으며, 박물관 교실, 박물관 대학, 찾아가는 박물관, 가족영화감상회 등 지역민을 위한 사회문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통하여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1963년에 출발, 1987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여 물질문화실, 정신문화실, 기획전시실 및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에 개최되기 시작하여 매 2년마다 중외공원문화벨트에서 개최되고 있다. 광주문화예술회관은 1991년에 개관하여 대극장, 소극장, 국악당 및 야외조각공원의 시설이 있으며, 시립국극단, 시립국악관현악단, 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 시립무용단,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광주시립미술관은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1992년에 독립 개관하여, 1995년에 비엔날레관을 개관하였다가 1999년에 분리되었고, 2003년에 분관을 개관하였다.
과거 북구 지역의 민속놀이는 농한기인 정월 내지 이월에 집중되었고, 농사일의 단계마다 놀이와 의식이 펼쳐지는 순환적인 주기를 가졌다. 하지만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전통사회의 질서가 급격히 재편되어 각종 명절일이 추석과 설로 집중화 되면서 세시풍속이 사라져가고 있다. 1970년대 보급되기 시작한 농기구의 기계화와 농약의 발달, 그리고 과학영농의 보급은 농촌의 공동 작업을 줄이고, 많은 세시풍속을 소멸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농촌인구의 감소는 농악대의 구성이 불가능하게 하여 정초의 당산제나 마당밟이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줄다리기, 고싸움, 나무쇠싸움, 동채싸움, 햇불싸움과 같은 대규모로 행해지는 남성들의 집단놀이 또한 사라졌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민속놀이는 각종 체육대회 때 행해지는 줄다리기와 농악, 윷놀이, 장기 등에 불과하다. 도시지역에서는 이러한 민속놀이가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모든 지방에는 예로부터 자연환경, 인물 등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북구는 무등산, 태봉과 같은 자연물과 견훤, 김덕령과 같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으로서 광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산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태봉은 북구에 있는 작은 봉우리인데 경양방죽의 매립 당시 태봉을 헐어서 매립하였다. 태봉은 1624년 왕후 한씨가 낳은 왕자의 태를 묻어 태봉이라 불렀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우며 이곳 광주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형성되어 구전되어 오고 있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당시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인물로 역사 현장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그를 용납하지 못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인물이다. 김덕령은 민중들에 의해 영웅으로 재창조 되었고, 충장공 김덕령에 대한 평가는 신록, 설화, 야사 등으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북구에는 본촌산업단지와 첨단과학산업단지가 있다. 본촌산업단지는 지역산업구 조정과 도심지역 업체의 집단화로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1979년 착공하여 1983년 937㎡용지로 완공되어 2008년 현재 125개 업체가 음식료, 조립금속, 섬유, 목재 업종에서 2087명을 고용하고 있다.
첨단과학산업단지는 21세기를 향한 과학기술입국 실현과 연구개발, 첨단산업, 교육, 문화, 주거환경의 5대 기능이 복합된 기술집약형 산업단지 건설을 목적으로 1991년 시작하여 2000년 완공되었다. 2008년 현재 입주업체는 368개이고 생산액은 2조 5천억 원, 고용인원 7044명이다.
북구의 토산품인 무등산 수박은 만생종 고산지대 수박으로 8월 중순 이후 추석절 전후에 출하되고 있으며 당도가 높다. 개량종과 달리 씨가 익어도 흰색이고 검은 점이 찍혀있으며 거죽이 한 색깔로 푸른색이라 ‘푸렝이 수박’이란 별명이 있기도 하다. 수박이 제대로 커서 익으면 한 개가 10∼20㎏에 달한다. 무등산 북쪽 기슭 금곡동을 중심으로 작목반을 만들어 재배하고 있다.
북구의 총 기업체 수는 3만 1372개이고, 제조업체 2126개, 전기 · 가스 · 수도사업 및 건설업체 1135개, 도 · 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체 1만 3742개, 운수 · 통신 · 금융 및 보험업체 4038개, 부동산 및 임대업, 사업서비스업체 1206개, 공공행정 및 사회보장행정, 교육서비스업체 2263개,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오락문화 및 운동관련 산업, 기타 공공수리 및 개인서비스업체 6167개 등이 있다.
한편 북구는 호남고속국도를 통하여 전주와 순천을 연결하는 광주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국도는 목포에서 서울을 연결하는 1번 국도와 화순에서 담양을 연결하는 15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어 광주의 북부와 동부 지역의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광주역이 있어 목포와 서울을 철도로 연결하고 있는 광주의 교통의 중심지이다.
북구는 무등산을 중심으로 광주호 주변의 가사문학유적지, 중외공원문화벨트 등이 자연과 문화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무등산은 북구와 동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구 지역에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암자를 세우고 원효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는 대웅전과 약사암이 있다.
자연경관으로는 서석대와 입석대가 있는데, 서석대는 거대한 병풍을 둘러 쳐놓은 것 같은 장엄한 돌무더기의 수정 병풍이다. 입석대는 1017m 지점에 석축으로 된 단으로 5∼6모 또는 7∼8모로 된 돌기둥이 반달 같은 모양으로 둘러서 있다.
가사문학유적지는 조선시대 무등산 주변에서 선비들이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닦기 위하여 경치가 좋은 곳에 누정을 짓고 학문의 산실로 활용하였던 곳이다.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에서 시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문학권을 형성하였다.
중외공원문화벨트에는 국립광주박물관, 역사민속박물관, 광주문예회관, 시립미술관, 비엔날레관 등이 있어 광주의 과거와 현재를 음미할 수 있는 문화예술 관광의 중심지이다. 한편 우치공원은 동물원, 식물원, 수목원으로 꾸며져 있고, 그 아래에 놀이시설인 광주패밀리랜드가 있어 가족단위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중흥동은 중흥1·2·3동의 법정동을 포함하고 있다.
북구의 중앙부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중흥동은 동쪽으로 동구 계림동, 남쪽은 북구 중앙동, 서쪽은 북구 신안동, 북쪽은 북구 용봉동과 접해 있다.
중흥동은 중가리와 신흥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광주군 경양면에 속했으며, 1955년부터 중흥동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957년 효죽동이 되었고, 1966년 효죽동에서 중흥동으로 분동되었다. 1979년 중흥동이 중흥1동과 중흥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2년 중흥2동이 중흥2동과 3동으로 분동되었다.
중흥동은 광주 외곽의 근교 농촌이었다가 1969년에 광주역이 옮겨오면서 역전시가지가 조성되었고 광주의 시역 확대로 주거지로 변모되었다. 지금은 역전 통인 중흥1동과 중흥2·3동이 철길에 의해 갈라져 있다. 전남일보, 한나라당사, 중흥시장, 북구향토문화센터, 북구문화원, 북구보건소, 동부교육청 등이 있다.
중앙동은 1997년 3월 1일 유동 · 북동 · 누문동이 통합되어 설치되었다.
북동은 조선 후기 광주군 기례방면에 속했다. 1946년 북정을 둘로 나누어 현무동, 정동이라 부르다가 1947년 다시 북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북동이란 지명은 광주읍성 북녘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여 지어진 것이다.
누문동은 광주읍성 북문 밖에 있었던 공북루의 이름을 따서 누문이라 했다. 조선 후기 광주군 기례방면 속했는데, 1946년 누문동으로 바뀌었다. 1952년 충순동이라 했다가 1957년 다시 누문동이 되었다. 1980년 4월 1일 북구청이 개청 당시 서구 관할이었던 누문동, 유동, 북동이 북구로 편입되었다.
도심공동화현상으로 주거 수는 감소하고 있으나 금융, 통신, 유통업 및 자동차정비관련 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주간활동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최근 유동, 북동, 누문동 각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물 · 유적은 1999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같은 해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광주북동천주교회가 있다. 신안은행, 조흥은행, 농협중앙회, 수창초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교보빌딩 등이 위치해 있다.
조선 후기 광주군 기례방면 지역에 속했고 유림촌이라 불렸다. 1935년 유림촌을 갈라 일부를 유정, 일부를 임정으로 고치고 1948년 임동으로 고쳤다. 1980년 4월 1일 북구청의 개청으로 서구에서 북구로 편입되었다.
임동은 광주천과 서방천이 만든 퇴적지형인 자연제방으로 배수가 잘된 농경지였다. 일제강점기에 종묘장과 답종제조소가 설치되고 농업학교가 설립되었다. 1935년 학동에 있던 가보네 공장이 옮겨오면서 시가지화 되었다. 가보네 공장은 일신방직과 전남방직으로 발전하였다. 1960년대에 서방천 하류 저습지를 매립하여 공설운동장(무등경기장)이 세워졌으며, 보훈회관과 서림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조선 후기 광주군 기례방면과 경양면에 속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기례방면 신촌리, 병항리 일부와 서양면 동리, 오치면 청계리가 합해져 서방면 신안리가 되었으며, 1955년 7월 1일에 광주시 풍향출장소 신안동이 되었다. 신안동은 1960년대까지 경양방죽 물로 벼농사를 짓던 농촌이었다.
북구의 관문역할(무등로, 서암로, 광주역)을 하는 교통중심 지역으로 숙박, 식품접객업소, 운수업체, 자동차부품관련업체 등 상가밀집 지역이며 현대백화점, 북광주전화국, 용봉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광주군 와지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반룡리와 용주리, 봉곡리, 청계리, 하촌리의 각 일부가 병합되었으며, 반룡과 봉곡의 이름을 따 용봉리라 하여 서방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신룡(태봉)동 관할이 되었다가 1983년 10월 1일 분동되어 용봉동이란 본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북구의 중앙에 위치하여 행정 · 교육 · 예술의 중심지이며, 동의 중심지에 전남대학교가 소재하며 비엔날레전시관 및 시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 비엔날레관, 전남대학교, 북구청, 현대병원 등이 위치해 있다.
운암동은 운암산(雲岩山)의 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조선 후기 광주군 황계면에 속해 있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내기, 용산리, 대자리의 일부와 함께 운암리라는 명칭으로 극락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동(洞)제 실시에 따라 동림동과 함께 동운동으로 개편되었다. 1982년 9월 1일 동운1동과 동운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93년 동운1동이 동운1동과 동운3동으로 분동되었다.
1997년 3월 1일 동운3동이 운암3동과 동림동으로 분동되었고, 동운1·2동은 운암1·2동으로 명칭 변경되면서 운암동이라는 원래의 명칭을 찾게 되었다.
서광주IC가 있어 고속도로를 통한 전주와 순천방향으로 진출입이 용이하다. 호남고속도로와 접해 있는 광주광역시의 북부 관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문로, 하남로 및 빛고을로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로 운암주공아파트 1·2단지 재건축 및 동림2지구 택지개발사업 등을 통한 대단위 아파트 건축으로 신흥 주거중심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어린이공원, 중외공원, 광주문화예술회관, 시립미술관 등이 위치해 있다.
운암산 자락에 안겨있는 동림동은 동배리와 죽림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후기 이 지역은 광주군 황계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배리, 죽림리, 용산리의 각 일부와 군분면 쌍촌리 일부, 덕산면의 동작리 일부 그리고 석제면의 외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림리라 해서 극락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7월 동으로 고치고 동운동의 관할이 되었다. 동운3동이 운암3동과 동림동으로 분할되면서 동림동이라는 원래의 명칭을 찾게 되었다.
도시와 농촌의 특성을 함께 지닌 전형적인 도농복합 지역으로 빠른 속도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지속적인 택지지구개발로 생긴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함께 농촌형 거주지(동배, 죽림마을)가 공존하고 있다.
관내에 시립장애인종합복지관과 동림초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지리적으로는 고속도로와 국도 1호선, 하남로, 북문로 등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뒷산이 와우(臥牛) 형국으로 되었다하여 1914년부터 우산리로 불렸다. 찰방이 있던 경양역이 있던 곳으로 담양, 화순, 동복, 순창, 옥과에 있는 6개 역을 거느렸으며, 1970년 6월 29일 효죽동에서 우산동으로 개칭되었다.
국민기초수급권자의 집단주거 지역이며 재개발대상 지역이며, 말바우시장 형성으로 장날은 교통이 혼잡하며, 시립무등도서관, 북광주등기소 등이 위치해 있다.
풍향동은 본래 광주군 두방면 지역이었는데 조선 후기 광주면 서방면에 속하였다. 당시 풍동과 고향교 고사의 이름을 따서 1914년 풍향리라 하였다. 1955년 풍향동이 되었고, 1957년 효죽동으로 개칭되었다. 1970년 효죽동에서 분동되었고, 1979년 5월 1일 풍향동이 풍향1동과 풍향2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풍향동은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주거 및 상가의 혼합지역으로 광주의 북동부 교육 및 생활권의 중심지이다. 광주교육대학, 동강대학, 서방시장 등이 위치해 있다.
조선 후기 광산군 편방면에 속하였다. 이후 오치면 송정 문산리와 두방면 각화리 지역이었다가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방면 문흥리와 각화리가 되었다.
1955년 광주시 풍향출장소 관할 문흥동과 각화동이 되었고, 1957년 문화동이 되어 문흥, 각화, 두암동을 관할하였다. 1961년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3년 구제 실시로 동구 관할이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신설된 북구 관할이 되었고, 1985년 11월 1일 두암동이, 1995년 3월 1일 문흥동이 분동되어 나갔다.
문화동은 광주광역시 동부관문인 동광주IC와 광주제2순환도로 진입로가 위치하고 있으며, 농산물공판장과 화물터미널이 있는 농산물유통설비지역과 화물유통의 요충지이다.
광주군 오치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정리와 문산리, 용주리의 각 일부와 서양면의 신흥리 일부, 두방면의 각화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문산과 신흥 이름을 따 문흥리라는 이름으로 서방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동제 실시로 문화동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에 문흥동으로 분동되었다. 1996년 1월 1일 문흥동이 문흥1동과 문흥2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구청소년수련관이 있다.
광주군 두방면 지역으로서 길가에 있는 큰 바위를 한자지명으로 풀어 두암(斗岩)이라고 불렀다. 두암동은 문흥동, 각화동과 함께 문화동에 속해 있다가 1985년 11월 1일 문화동이 문화동과 두암동으로 분동되었고, 1989년에 두암동이 두암1·3동으로 분동되었다. 1995년 3월 1일 두암1동이 두암1·3동으로 분동되었다.
호남고속도로 동북부 진입로가 위치한 광주의 관문지역이다. 1992년 택지조성과 1994년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신흥도심 지역으로 상업 및 그린벨트가 병존하는 지역이다.
장열사, 무진고성지의 문화유적이 있으며, 주요기관으로 동강대학, 국민건강보험공단 광주지역본부가 있다.
본래 광주군 오치면 지역으로서 삼각산 아래 위치하고 있어 삼각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산리, 외촌리, 가작리를 병합하여 삼각리라는 이름으로 서방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서산동 관할이 되었으며, 1953년에 원삼각마을 일대에 향토사단이 들어섰다. 2003년 7월 7일 서산동에서 삼각동으로 분동되었다.
삼각동은 공동주택 중심의 주거지역과 자연마을이 함께하고 있으며, 개발제한구역이 있어 도농복합행정을 수행하고 우치로 및 용봉천 복개도로 개설로 도심과 가까운 쾌적하고 아름다운 자연녹지 보전지역이다.
조선 후기 일곡동은 광주군 석제면 지역으로 1792년까지 일곡(一曲), 1795년부터 일곡(一谷), 1801년 일곡(日谷)이라 했는데 1914년에 본촌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1958년 동제 실시에 따라 본촌동 관할이 되었다. 1985년 본촌동에서 서산동으로 분리되었다가 2003년에 서산동에서 일곡동으로 분리되었다.
일곡지구 택지개발에 따른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일부 자연마을 공존하는 주거지구로 경관녹지, 공원, 산책로 등 생활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다. 각급 학교 및 도서관이 위치한 교육의 요충지이다.
매곡동은 어매(於梅)와 봉곡(鳳谷)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조선 후기 이 지역은 광주군 와지면에 속했다가 서방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에 광주시에 편입되었다.
1957년 동제실시에 따라 매곡, 오치, 삼각동을 합해 서산동이라 하였다. 1994년 7월 1일 서산동이 서산동과 오치동으로 분동되었고 1997년에 서산동은 서산동과 매곡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중심인 중외공원과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남공무원교육원, 국립광주박물관, 전라남도교육청 등이 위치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촌리, 하촌리, 일부 지역을 병합 오치라 해서 서방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서산동의 관할이 되었다. 1994년 7월 1일 서산동에서 오치동으로 분동되었고, 1997년 3월 1일 오치동은 오치1동과 오치2동으로 분동되었다.
오치동은 광주광역시 북쪽의 진산인 삼각산 남쪽 기슭에 안겨 있는 아늑한 지역으로서 읍취정, 오산정, 노씨제각 등 선열들의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고, 1955년 31사단이 들어오고 1980년대 말 토지구획정리사업과 1990년대 초 문흥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하여 한적한 농촌에서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북부경찰서, 북부소방서, 한국전력전남지사가 위치해 있다.
조선 후기 광주목이 광주군으로 개칭되어 충효지역은 광주군 석제면, 청옥지역은 광주군 상대곡면, 장운지역은 광주군 하대곡면에 속하였다.
1914년 조선총독부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광주군 석저면, 상대곡면, 하대곡면, 창평군 내남면과 서면 일부가 광주군 석곡면으로 통폐합되었다. 1955년 광산군 석곡면이 광주시로 편입되었고 1957년 충효 · 청옥 · 장운리가 동이 되었다.
1961년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고, 1973년 구제 실시로 동구 석곡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80년 북구청 개청으로 북구 관할이 되었다. 1998년 9월 21일 충효동 · 청옥동 · 장운동이 석곡동으로 통폐합 되었다.
석곡동은 무등산 자락 북쪽에 위치해 있고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할 구역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과 공원지역으로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되어 있다.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광주군 갑마보면과 우치면, 삼소지면, 석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본촌면으로 통폐합 되었다.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의 관할이 되었다. 1998년 9월 21일 행정동 통폐합 조치에 따라 본촌, 우치, 삼소의 행정동이 없어지면서 건국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건국동은 도시, 농촌, 첨단단지, 공단지역 등 복합적 기능을 하고 있으며, 양산지구택지개발 및 도시기반시설 확충과 생활환경 향상으로 유입인구가 급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