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의 산내암자인 극락암에 봉안되어 있는 칠성탱화로, 9폭이 1조를 이룬 불화이다. 화기(畵記)에 제작년도나 화승 등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왕실의 안녕과 수명장수를 축원하는 글만 있다. 이는 어전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어 감히 작자의 낙관을 찍을 수 없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양식과 색채로 보아 조선 말에서 대한제국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한다. 9폭 모두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그림의 크기는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 1폭은 세로 117㎝ 가로 118㎝이고, 나머지 8폭은 세로 약 116㎝ 가로 약 105㎝이다. 200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중앙의 본존인「치성광여래도」 1폭을 중심으로 「칠원성군도(七元星君圖)」 7폭, 「삼태육성(三台六星)」 1폭 등 모두 9폭이 1조로 구성되어 있다. 「치성광여래도」는 화면 중앙에 청색의 천공을 배경으로 구름 속에 솟아오른 연화좌 위에 본존이 앉아 있고, 좌우로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이 시립하였다. 본존의 두광 좌우에는 태상노군(太上老君)과 개덕진군(開德眞君)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두광과 신광을 갖춘 치성광여래는 금륜(金輪)을 받쳐 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둥글며 약간 긴 얼굴, 넓은 어깨와 당당한 가슴 등 전반적으로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복식은 오른쪽 어깨를 덮은 변형통견식 가사를 걸치고 안에는 승각기(僧脚崎)를 입었다. 하반신은 녹색 군의를 둘렀다. 주색 가사에는 백모란문과 국화원문이 장식되었고, 가장자리에는 화문장식띠가 표현되어 있다.
치성광여래의 좌우로 시립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정면을 향하여 있고 답할연좌(踏割蓮座) 위에 서 있다. 얼굴과 육신부는 본존과 동일하며, 보발이 허리까지 흘러내린다. 착의는 연녹색 천의를 걸치고 백색 치마를 둘렀다. 본존과 일광보살 사이에 태상노군은 마치 육계처럼 살이 높이 솟아오르고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이 인상적인 노구(老軀)의 모습으로 합장하며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월광보살 사이에 위치한 개덕진군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홍색 장삼을 입고 역시 여래를 향해 서 있다.
그 좌우로 배치된 보궁성삼태육성도(輔弼星三台六星圖)는 상단의 자미대제를 중심으로 좌우 보궁성(補弼星)과 하단에 삼태육성(三台六星)이 나란히 열지어 서 있는 모습이다. 화려한 관을 쓴 자미대제는 두광과 거신광을 갖추고 왼손에 홀을 쥐고 있다. 백색의 육신에 얼굴은 방형이며, 입을 약간 벌려 웃는 듯한 인상이 친근감을 준다.
칠원성군 중 북두제일탐낭성군도(北斗第一貪狼星君圖)는 화면 중앙에 홀을 쥐고 합장한 탐낭성군이 구름 위에 서 있고, 그 좌우로 성군을 향해 시립한 4위의 성수가배치되었다. 탐낭성군은 이중광배를 갖춘 입상으로, 머리에 쓴 화려한 보관에는 금색성취불이 있다. 육신부와 얼굴, 광배 등이 자미대제와 매우 유사하다. 주조색은 주색과 녹색, 군청, 황색, 백색 등으로 밝고 화사하게 표현되었으며 보관의 장식과 홀,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는 장식이나 성수의 머리 묶음 끈 장식 등에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함을 더한다.
이 칠성탱은 치성광여래도를 중심으로 9폭이 1조를 이룬 완품으로 수작에 속한다. 화기에는 제작연대나 제작자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왕실의 무사안녕과 수명장수를 축원하는 명문이 있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불화 편년과 당시의 불교미술 연구에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