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水陸齋), 기우재(祈雨齋) 등 야외에서 개최되는 의식에 사용된 불화이다. 화면의 크기는 세로 864㎝, 가로 584㎝이며, 16폭의 삼베를 연결하여 바탕을 마련하였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69년(영조 45)에 수화승 쾌윤(快玧)의 지휘하에 복찬(福粲), 평삼(萍三) 등 13명의 승려 주1이 참여해 조성하였다. 이후 19세기에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1차는 1819년(순조 19)에 송월당 찰감을 비롯한 6명의 화원에 의해, 2차는 1870년(고종 7)에 금암당(錦巖堂) 천여(天如) 등 11명의 화원에 의해 중수되었다. 괘불 조성 당시 수화승인 쾌윤은 18세기 후기에 선암사에서 주석하면서 화풍을 떨쳤으며, '윤총각'으로 불렸다고 한다. 의겸(義謙)의 화풍을 이었고, 약 50년간 활동하며 5점의 괘불 제작에 참여하였다. 용문사 괘불은 그가 수화승으로서 제작을 주도한 작품 중 대표작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만을 좌우 협시로 배치한 입상의 삼존도 형식이다. 17세기의 군도식 구성 괘불과 달리 18세기에는 석가모니불 중심의 삼존 또는 오존 구성의 단순화된 형식이 유행하는데, 용문사 괘불은 18세기 도상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정면을 향한 얼굴이 신체에 비해 비교적 크게 표현된 점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편이지만, 존상의 형태 및 표정, 색채와 문양 등에 있어 18세기 후반경 불화의 전형 양식을 잘 보여 준다. 18세기 석가삼존 도상의 흐름을 이은 사례로, 이 시기 괘불탱 연구에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