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관음탱화의 대다수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조성된 작품이다. 우리 나라에 관음경전의 유입 및 신앙의 성행과 함께 관음보살을 소재로 한 많은 불화가 제작되었다. 고려시대는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근거하여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금강석 암좌에 앉은 관음보살을 비중있게 그리고, 아래쪽 하단에는 관음을 향해 경배하는 선재동자를 작게 그린 수월관음도가 주로 그려졌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제작 전통과 신앙 정신을 이어받아 여전히 지속적으로 관음탱화가 조성되었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기본 도상에 법화경 신앙이 성행하면서 법화경의 주2에 전거하여 구제관음으로서의 기능이 반영되는 등 주1에 변화가 나타난다. 관음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서른 두 가지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모습을 그린 관음33응신도가 대표적인 관음탱화이다. 일본 지온인[知恩院]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1550년 인종(仁宗)의 비(妃)였던 공의왕대비(恭懿王大妃)가 돌아가신 인종의 극락 정토 왕생을 발원하며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道岬寺)의 금당(金堂)에 봉안한 「도갑사 관음삽십이응신도(道岬寺觀音三十二應身圖)」이다. 재난과 질병을 막아 주고 고난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해 주는 관음보살의 전형이 되었다.
후기에는 사찰의 원통전, 관음전의 예배용 후불도로서, 또는 개인의 신앙 대상인 원불로 봉안되기도 하였다. 관음은 이제 더이상 측면을 보고 있지 않고, 정면을 마주보며 예불하는 중생을 응시한다. 아래쪽에는 선재동자와 여의주를 받쳐 든 용왕과 용녀가 배치되는데 선재동자는 남순동자로도 불린다. 도상적으로는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를 기본 구성으로 순백의(純白衣)를 걸친 주5, 임신과 출산을 관장하는 아이를 안은 송자관음(送子觀音), 주3, 주4 등으로 세분되며 좌상과 입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