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탱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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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강진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회화
개념
관세음보살에 관한 신앙을 그림으로 묘사한 불화. 불화.
목차
정의
관세음보살에 관한 신앙을 그림으로 묘사한 불화. 불화.
내용

주로 사찰의 원통전(圓通殿)에 봉안된다. 관음보살은 법화변상도(法華變相圖)의 성중(聖衆)이다.

그래서 아미타변상도(阿彌陀變相圖) 속의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 속에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관음 신앙이 보다 강조되고 독립적인 신앙 형태를 취하게 됨에 따라 독립적인 불화로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 있는 고려시대의 작품들을 제외하면,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관음탱화는 대부분이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특히, 일본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고려 관음탱화에는 수월관음(水月觀音)이 묘사되어 있다.

수월관음은 ≪화엄경≫의 입법계품(立法界品)에 근거하여 묘사한 것이다. 입법계품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항상 인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보타락가산은 많은 성중들이 살고 광명이 넘치며 나무의 꽃이 끊임없이 피어 늘 향기가 나는 곳이다. 이곳의 맑고 깨끗한 연못가 금강보석 위에는 관음보살이 결가부좌하고 앉아, 중생을 이롭게 하고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방문을 받아 설법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전경을 묘사하는 것이 관음탱화의 일반적인 유형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관음탱화는 중앙 상단의 궁전 속에 관음보살이 좌정하여 있다. 그 아래쪽에는 협시로서 남순동자(南巡童子)와 해상용왕(海上龍王)이 많이 그려져 있다.

수월관음화는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오늘날에도 국경공(國京公)이 찬한 <수월관음화>, 한생(韓生)이 그린 <백의수월관음화>, 복령사(福靈寺)<수월관음화>에 관한 기록들이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고려의 수월관음화는 중국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재동자·암굴·염주·공양자 및 보주(寶珠)를 든 용, 한 쌍의 청죽(靑竹) 등의 표현은 다른 나라의 탱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의상(義湘)이 친견한 낙산(洛山)의 수월관음을 도상화한 형식이 계속 유행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도 관음탱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수월관음도였다. 그러나 밀교(密敎)의 영향을 받은 천수관음(千手觀音)·백의관음(白衣觀音)·양류관음(楊柳觀音) 등의 탱화도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관음탱화로는 1323년(충숙왕 10년)에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수월관음도>와 혜허(慧虛)가 그린 <수월관음도>, 1301년(충렬왕 27년)에 김우문(金祐文)이 그린 <수월관음도> 등 고려시대 작품 11점이 일본의 소장가나 사찰에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작품으로는 무위사(無爲寺)<양류관음도>, 운흥사(雲興寺)<수월관음도>, 해인사(海印寺)<수월관음도>, 도갑사(道岬寺)<삼십이관음응신도>(일본 知恩院 소장) 등이 유명하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 』7-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고려불화의 연구』(홍윤식, 동화출판공사, 1984)
『한국의 미 』16-조선불화-(문명대 감수, 중앙일보사, 1984)
집필자
홍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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