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남해군 제1의 사찰로서 신라시대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금산(錦山)에 창건한 보광사(普光寺)의 후신이라고 전하는데, 이 절에는 처음에 첨성각(瞻星閣)만이 있었다고 한다.
1660년(현종 1)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용문사 입구가 마주하고 있다 하여 유생들이 절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였고, 이에 백월(白月)이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잡고 용문사라 하였다. 1661년( 현종 2)에 신운(信雲)이 탐진당(探眞堂)을 세웠고, 상운(尙雲)이 적묵당(寂默堂)을 세웠다. 1666년 대웅전을 지었으며 봉서루(鳳棲樓)를 창건하였다. 그 뒤에도 명부전 · 나한전 · 향적전 · 천왕각 등을 지었다. 그리고 1708년( 숙종 34)에는 염불암을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모든 승려들이 의승군(義僧軍)이 되어 왜병과 싸웠고, 숙종 때에는 이 절을 수국사(守國寺)로 지정하고 왕실의 축원당(祝願堂)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해서 촉대 · 번 등을 하사하였다. 지금의 용문사는 호은당이 1896년부터 천왕문, 시왕전, 미륵전, 대지전, 영산전, 소지전 등을 복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천왕문 · 승당 · 칠성각 · 산신각 · 누각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처마 밑에는 사찰의 이름에 어울리게 용두(龍頭)를 조각하였고, 불단(佛壇) 위에는 화려한 닫집이 있다. 명부전은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또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용문사 석조보살좌상은 임진왜란 때 이 절이 소실된 뒤 중창을 위하여 경내를 파다가 출토된 것으로 고려시대 중기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도 임진왜란 때 용문사의 승병들이 사용하였던 삼혈포(三穴砲)와 숙종 때에 하사받은 유물들이 있다. 하사받은 유물은 연옥등(蓮玉燈) 2개와 촉대 1개, 번(幡)과 수국사금패(守國寺禁牌) 등인데, 연옥등과 촉대는 일본인들이 빼앗아갔다. 이 가운데 번은 축원당에 걸어두었던 궁수(宮繡)와 궁중매듭이다. 세로 147㎝, 가로 32.5㎝의 비단에 ‘南無大聖引路王菩薩(나무대성인로왕보살)’이라고 수를 놓고 그 둘레를 우아한 매듭으로 장식하였다. 또, 수국사금패는 경릉관(敬陵官)과 익릉관(翼陵官)이 발급한 것으로 지름 14.5㎝의 원통형 나무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