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제작된 수월관음을 그린 불화이다. 고려시대 작품은 46점이 알려져 있다. 수월관음도는 달과 같은 광배를 갖춘 보살이 물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불화인데, 화엄경에서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조선시대에도 법화경 신앙에 의한 구제관음으로 변화되면서 여전히 조성되었는데, 전기의 작품들은 왕실 발원의 작품이 많고, 후기의 사례는 사찰의 부속 전각으로 건립된 관음전, 원통전의 후불도로 조성되어 예배화로 봉안된 것이 많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중국에서 당송시대 이후 형성된 33변화관음 중 물에 비친 관음보살의 모습을 주1화한 불화가 수월관음도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다니다 관자재보살을 28번째 만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이 내용을 근거로 하여 주2의 연못가 바위에 앉아 구법행을 위해 찾아온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고 있는 모습이 주로 그려졌다.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당말(唐末) 오대(五代)시기 돈황(敦煌) 지역에서 제작된 비단에 그려진 그림으로, 물가 암석 위에 반가부좌 형태로 앉은 관음이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에는 약기(藥器)를 들고 있다. 뒤로는 커다란 달이 물 위에 떠 있으며 세 그루의 대나무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화면 왼쪽에는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불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관음보살도 대부분이 물에 비친 달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반가부좌한 아름다운 관음보살을 그린 수월관음도이다.
고려 후기에 조성되어 전세계 약 160여점 남은 고려 불화 중에서 수월관음도는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어 관음신앙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의 현존 작품은 14세기에 제작된 46점이 알려져 있다. 대부분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유럽 등 해외에 소장 중이며, 국내에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2점을 비롯하여 우학문화재단,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호림박물관 소장의 수월관음도와 2016년 일본에서 구입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수월관음도가 있다.
조선시대에도 수월관음도는 여전히 지속적으로 조성되었는데, 주로 법화경 신앙의 유행과 함께 관음보살보문품(觀音菩薩普門品)의 내용이 형상화되었다. 즉 언제 어느 곳에나 주3 않는 곳이 없다는 보문시현(普門示現)의 대자대비(大慈大悲) 구고구난(救苦救難)의 관음보살로서 모든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고통과 액난을 소멸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전기와 후기의 작품에서 차이가 있는데, 대다수가 일본에 남아있는 전기의 작품들은 왕실 발원의 작품이 많고, 후기의 사례는 사찰의 부속 전각으로 건립된 관음전, 원통전의 후불도로 조성되어 예배화로 봉안되었다. 도상적으로는 고려 때는 측면향에 반가좌한 자세가 기본이지만, 조선 전기에는 관음보살이 정면을 바라보면서 유희좌(遊戲坐)나 윤왕좌(輪王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배경의 대나무도 굵은 쌍죽(雙竹)에서 가는 세죽(細竹)으로 변화를 보인다. 후기에 이르면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건립된 중심 전각의 후불벽에 벽화로 조성된다거나, 수월관음의 전형인 투명 베일은 순백의(純白衣)로 바뀌고 전각의 예배화로 봉안된 수월관음도는 결가부좌를 취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수월관음도는 관음신앙의 융성과 함께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입각한 보타낙가산 관음주처의 도상이 고려시대 정형화되었다면, 조선시대에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비롯하여 주4류에 기술된 관음의 강력한 위신력인 구고구난 신앙이 바탕에 깔려 도상적으로 변화가 주어졌다. 고려의 수월관음도가 보살도를 설하는 관음을 표상으로 진리를 찾는 구도자로서 선재동자를 그린 반면, 조선시대에는 중생에 직접 나아가 구제력을 펼치는 현신의 관음으로 그려졌고, 바닷가 금강굴 아래 주처는 현실의 관음전으로 옮겨와 자리한 수월관음도의 변모를 통해 시대를 넘어선 관음신앙의 성행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