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석조여래입상은 1924년 3월 풍기읍 욱금리 영전마을의 한 주민이 꿈을 꾸고 난 후 땅속에서 발견하였다고 한다. 영전마을은 신라 의상대사가 3천 문도를 거느리고 90일 동안 화엄대전을 강의했다는 소백산 추동(錐洞: 송곳골)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이 봉안된 영전사는 본래 욱금리에 있었으나 1949년 군당국의 소거령으로 현재의 동부리로 이전되었다. 이 불상은 조각 수법의 특징들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원래 불상과 광배, 대좌 모두 한 돌로 조성되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대좌 일부분인 앙련과 불상만이 남아 있다. 불상의 코, 이마, 손가락, 발 등 훼손이 심한 부분은 복원된 상태이다. 불상의 육계는 봉긋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전반적으로 통통한 편이다. 눈·코·입은 작게 표현되었으며 뺨이 통통하여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착의법은 통견이며 가슴 위에서 승각기가 표현되었으며, 대의 아래에 군의를 볼 수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중지를 맞대고 위로 향하여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있는데, 수인만으로는 이 불상의 존명을 알 수 없다.
이 불상은 원만한 상호, 당당한 어깨, 옷주름과 옷자락의 원호문 등에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조각수법과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신라 의상대사의 행적과 관계가 깊은 영전사에 봉안된 이 불상은 통일신라 조각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