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구사범학교의 항일비밀결사인 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힘쓴 교육자·독립운동가.
개설
항일결사연구회는 비밀을 엄수하고 매월 10일 연구발표와 하급생지도 및 동지포섭 등에 관한 방침을 정하고, 1941년 2월부터 같은 해 3월 17일까지 6회의 모임을 가졌다. 오용수는 3회 모임부터 참가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회원이 졸업을 하게 되자 동회는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구상하게 되었다. 즉 졸업 후 각기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현지의 활동상황 및 성과를 매월 1회 사무원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이렇게 보고된 상황은 취합하여 다시 전 회원에게 배부하기로 하였는데, 이때 우송방법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공문을 가장하기로 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97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971)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문화일보』(20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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