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크기는 세로 193.3㎝, 가로 210.3㎝ 이다. 원래 경남 의령군 수도사에 봉안되었으나 현재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화기에 의하면 1786년(정조 10)평삼(評三) · 유성(惟性) · 성윤(性允) · 찰민(察敏) 등 7명의 화사가 참여하여 제작했다고 한다. 감로도는 지옥 중생의 넋을 천도하는 반승의식(飯僧儀式)을 베풀어 극락교주 아미타불 일행이 서방정토로 인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감로탱은 다른 불화보다 민중의 모습이 다양하게 반영되고 있는데 그 전형은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확립되었다. 상주 「남장사감로도」(1701년)를 비롯하여 김천 「직지사감로도」(1724년), 하동 「쌍계사감로도」(1728년), 여수 「흥국사감로도」(1741년) 등 여러 점이 남아 있다. 「수도사감로탱」은 이보다 뒤의 작품으로,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화면에는 7여래(如來)와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아귀, 지옥과 죽음 장면, 그리고 현실의 모습을 담은 인물군 등을 표현하고 있다. 상단에는 극락으로 길을 인도하는 오색당번을 쥔 인로왕보살과 벽련대반을 싣고 가는 천녀들이 있고, 그 향우측에는 관음과 지장을 거느린 아미타불을 포함한 7여래가 강림하는 불보살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아미타여래를 포함한 7여래는 운문에 떠받쳐진 답할연좌(踏割蓮座) 위에 나란히 서 있는데, 특히 내영 형식의 아미타삼존은 상체를 약간 아래로 숙여 중생을 향해 손짓하며 강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뒤쪽으로는 선재동자가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을 들고 서 있다. 중단에는 중앙에 성대하게 차린 공양상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았고, 그 아래 두 아귀를 두고 작법(作法)을 거행하는 승중(僧衆)과 왕후장상 및 왕후궁녀 등을 두었다.
하단에는 욕계(欲界)의 여러 장면을 구성지게 배치하였는데, 뇌신(雷神)을 비롯해 갖가지 죽음 장면과 지옥의 모습, 그리고 현실세계의 고통어린 모습 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병자가 고통 받아 누워 있는 모습, 머리채를 휘어잡고 부부가 싸우는 모습, 화재로 인해 불 속에서 고통 받는 민초, 무녀가 굿하는 모습, 탈춤 추는 모습, 긴 나무 위에서 곡예를 하는 모습, 벼랑에서 약초를 캐다가 떨어지는 심마니의 모습, 물살에 휩쓸리는 모습이 있고, 갖가지 죽음의 장면으로는 수레에 깔려 죽는 모습, 말에 깔려 죽는 모습, 호랑이를 만나 죽음을 당한 모습, 말을 타고 화살 · 방패 · 총을 들고 전쟁하는 모습 등이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불화이지만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화면 아랫부분에 보이는 호랑이와 사슴의 모습은 민화적인 요소로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주조색은 연녹색 바탕에 주색과 녹색이 대비되는 설채에 부분적으로 청색을 가미하였으며, 각진 수묵의 암산 표현이 눈에 띈다.
18세기 감로탱에는 각 장면마다 방기명(傍記銘)을 밝혀 도상 해석에 도움을 준다. 특히 여수 「흥국사감로도」(1741년)나 무화기(無畵記) 「선암사감로도」(18세기)와 구성방법이 흡사하여 한 모본과 한 유파에 의하여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감로탱도 각 장면의 구성이나 인물묘사, 경전에 충실한 내용을 도설한 방기명, 주색과 녹색의 대비를 보여주는 설채법 등에서 18세기 후반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점 등 당시의 감로도 도상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