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암 대웅전 내에 있는 1구의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으로, 1998년 1월 9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내부에서 나온 복장기(腹藏記)에 의해 1723년(경종 3) 길쌍계사(吉雙溪寺)에서 조성한 불상으로 밝혀졌는데, 어느 시기부터인가 이곳 채운암으로 옮겨 봉안해오고 있다.
머리는 굵은 나발(螺髮)로 검게 채색하였으며, 육계(肉髻)는 불분명한데 정상 계주(髻珠)와 중앙 계주를 표현하였다. 얼굴은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데, 가느다란 눈, 날카로운 콧날, 얇은 입술, 밖으로 휘어진 귀 등의 이목구비가 모여 단정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인상을 빚어내고 있다. 신체는 머리에 비해 상체가 짧고, 두꺼운 옷에 감싸여 인체의 굴곡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등 전체적으로 평판적이고도 둔중한 느낌을 준다.
대의(大衣)는 양 어깨를 가린 통견식으로, 가슴까지 올라온 내의(內衣) 상단을 폭넓게 주름잡아 고정시킨 것이라든지, 복부에 늘어진 U자형 주름, 결가부좌한 무릎 위로 흘러내린 잎사귀 모양의 옷자락 등에서는 조선 전기 조각의 여운이 감돌며, 다소 형식화된 모습을 나타낸다.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살짝 구부리고, 왼손은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놓아 역시 엄지와 중지를 구부린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맺은 수인은 동시대 아미타불상의 손가짐과 일치한다.
이 목조여래좌상은 이 시기를 전후하여 조성된 조각상들, 예를 들어 용문사(龍門寺) 목조아미타불좌상(1684년), 남장사(南長寺) 관음선원 목조삼존불좌상(1694년), 도리사(桃李寺) 목조아미타불좌상(1731년 개금), 백담사(百潭寺) 목조아미타불좌상(1748년), 실상사(實相寺) 약수암 목조아미타불좌상(1782년) 등과 비교해 볼 때, 방형적이고 둔중한 형태미, 현저하게 커진 사각형의 얼굴, 평판적인 신체, 두꺼운 불의, 평면적이고도 형식화된 옷주름 등의 여러 표현 요소들에서 상통하는 점이 많아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723년이라는 조성연대가 밝혀진 이 여래좌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 전란 이후 조선 후기 조각에서 진행되기 시작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조선 후기 불상양식의 기준이 되며, 이러한 양식은 18세기로 접어들면 완전히 정착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