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삼층목탑형의 쌍봉사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극락전에 목조 아미타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이 봉안되어 있는데, 협시보살은 1989년 도난당한 후 새로 조성된 것이다. 아미타여래좌상의 바닥면에 적힌 「발원문」을 통하여 1694년(숙종 20)에 대웅전 목조삼존불상과 같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불상을 조각한 승려들은 색난(色難), 모현(慕賢), 득우(得牛) 등으로, 이들은 17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조각승으로 전라도 여러 지역 사찰의 불상을 제작하였다.
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 중형 불상 가운데 큰 편이다.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좌상보다 양 어깨가 벌어진 당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신체에 비하여 약간 얼굴이 크고, 어깨를 당당히 펴고 고개를 앞으로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소라모양의 나발(螺髮)이 촘촘하고,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육계가 솟아 있으며,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계주(中央髻珠)와 머리 정수리에 원통형의 낮은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와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대의자락이 오른쪽 어깨에 걸쳐 반달 모양으로 접힌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대의자락 일부가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어깨에서 수직으로 내려와 반대쪽 대의자락과 U자형으로 겹쳐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파도가 일렁이듯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다. 특히, 왼쪽 허벅지 밑으로 길게 늘어진 연봉오리형 대의 끝단은 17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동한 조각승 색난 비구가 제작한 불상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요소이다. 대의 안쪽에 복견의(覆肩衣)를 입고, 가슴을 가린 승각기(僧脚崎)를 수평으로 묶어 상단이 5개의 앙련형으로 표현되었다. 뒷면은 목 주위에 대의를 두르고, 앞쪽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길게 연판형으로 늘어져 있을 뿐이다. 두 손은 따로 만들어 손목에 끼웠고, 가슴 앞에서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의 아미타수인을 취하고 있다.
이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 중형불상 가운데 큰 편으로,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좌상보다 양 어깨가 벌어진 당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불상의 왼쪽 허벅지 밑으로 길게 늘어진 연봉오리형 대의 끝단은 17세기 후반의 조각승 색난 비구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성연대가 정확히 밝혀져 있고, 불상을 조각한 승려들이 17세기 중반에 전라도 각 지역 사찰의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의 기준작으로서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