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약사전 석불 좌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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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강화 전등사 약사전 석불좌상
강화 전등사 약사전 석불좌상
조각
유물
문화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 약사전에 봉안된 고려 후기 석조여래좌상.
이칭
이칭
전등사 약사전 석조여래좌상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인천광역시
종목
인천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2004년 04월 06일 지정)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전등사)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 약사전에 봉안된 고려 후기 석조여래좌상.
내용

2004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 91.7㎝, 무릎 폭 60.5㎝. 하나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불상이다. 머리가 신체에 비해 작은 편으로 안정감이 있다. 어깨가 넓은 각진 신체, 간략한 옷주름 표현 등에서 단순하고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머리 위의 육계는 높이 솟아 있고, 둥글고 큰 나발(螺髮)을 새겼다. 불상을 개금하기 전 사진을 보면 육계를 중심으로 정상계주와 중앙계주가 있었지만 개금을 두껍게 하여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타원형의 얼굴에 반쯤 뜬 것 같은 작은 눈은 수평에 가깝고, 코는 원통형으로 곧게 뻗어 있으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 있다.

두껍게 표현된 대의는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으로 걸쳤고, 옷주름은 대칭으로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대의자락이 가슴 밑까지 ⨆모양으로 늘어져 있고, 젖꼭지가 작게 도드라져 있다. 방형의 하반신에는 몇 가닥의 옷주름만을 표현하였고, 양다리 사이에 단순한 부채 형태의 주름을 새겼다. 두 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손바닥을 위로 하고, 왼손 위에 오른손을 포갠 다음 중지를 구부려 맞대고 엄지의 끝과 닿게 한 상품중생의 아미타 수인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불상은 약사불로 불리고 있는데,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어 그렇게 인식된 것인지, 혹은 아미타 수인으로 후에 보수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러한 수인(手印)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예가 있을 뿐이다.

특징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고, 최근에는 1621년에 약사전을 건립하면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제시되었다. 두껍게 개금된 현재의 상태로는 조성 당시의 불상 원형을 파악할 수 없지만, 경기와 서울에 있는 사찰 가운데 약사전에 봉안된 석조약사불좌상과는 양식적으로 차이가 있다.

의의와 평가

지금까지 약사불로 불렸지만 현재 수인을 보면 아미타불일 가능성도 있다. 이 불상처럼 상품중생의 수인을 가진 불상은 경상북도 영주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나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자씨각 내 하반신만 남은 불상에서 볼 수 있다. 전등사 약사전 석조여래좌상은 신체 비율과 대의 처리 등을 통하여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 전등사와 선원사지』(김형우 등,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2011)
『전등사: 대웅전·약사전 정밀 실측 보고서』(문화재청, 2008)
집필자
최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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