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쌍봉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석가여래좌상 및 가섭존자상과 아난존자상이다. 이 불상과 동시에 제작된 쌍봉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의 대좌 밑바닥에 쓰인 「발원문」에 “……강희(康熙) 33년 미타전에 미타(彌陀)와 좌우 관음(觀音) ·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삼층보전에 석가(釋迦)와 아난(阿難) · 가섭존자(迦葉尊者)를 봉안하였다. … 금어질 색난(色蘭), 모현(慕賢), 득우(得牛)…”라 적혀 있어 1694년(숙종 20)에 색난, 모현, 득우 등이 불상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삼층목탑형인 대웅전은 1690년에 중수되었음이 해체 보수 때 상량문을 통하여 밝혀졌으나, 이 전각은 198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다행히 법당 내부의 불상은 화재를 피해 1986년 새로 복원된 대웅전 내에 다시 봉안되었다.
석가여래좌상은 신체에 비하여 약간 얼굴이 크고, 어깨를 당당히 펴고 고개를 앞으로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나발(螺髮)이 촘촘하고,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육계가 솟아 있으며,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계주(中央髻珠)와 머리 정수리에 원통형의 낮은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둥근 얼굴에 가늘고 길게 뜬 눈, 원통형의 코, 미소를 머금은 입 등이, 그리고 목에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대의자락이 오른쪽 어깨에 걸쳐 반달 모양으로 접힌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대의자락 일부가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어깨에서 수직으로 내려와 반대쪽 대의자락과 U자형으로 겹쳐져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펼쳐져 있다. 특히 앉은 왼쪽 허벅지 밑으로 길게 늘어진 연봉오리형 대의 끝처리는 주목되는 점이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는 상단이 5개의 앙련형(仰蓮形)으로 표현되었다.
수인은 오른손은 촉지인(觸地印)을, 왼손은 다리 위에 가지런히 놓은 채 손바닥을 펴고, 중지와 약지를 손바닥 쪽으로 구부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인은 1684년(숙종 10) 색난(色難) 비구가 제작한 강진 옥련사 목조여래좌상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팔목에 ‘釋迦(석가)’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조선 후기 석가여래의 수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편, 가섭존자상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아 깍지를 낀 자세로 장삼과 가사를 걸치고 있다. 그러나 장삼과 가사에는 새로이 개채(改彩)되어 고풍스러운 멋이 사라졌고, 가사는 붉은색에 검정으로 선을 그려 대조를 이루는 마름모 모양으로 처리되었다. 양 어깨를 덮은 장삼은 손목에서 긴 타원형을 그리는 소매와 왼쪽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걸친 장삼이 무릎까지 내려가 있다. 다리 사이로 늘어진 긴 옷단의 표현이 특이한 점이다. 아난존자상은 얼굴 형태, 손의 자세, 의습 표현에서 가섭존자상과 동일하지만, 얼굴은 동안(童顔)이고 머리 정수리 부분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석가여래좌상과 가섭존자상 · 아난존자상이 함께 봉안된 삼존불은 그 예가 드문 특이한 배치방식이다. 석가여래좌상은 왼쪽 허벅지 밑으로 길게 늘어진 연봉오리형 대의 끝처리가 주목된다. 한편, 가섭존자상의 불의는 다리 사이로 늘어진 긴 옷단의 표현이 특이하며, 아난존자상은 얼굴이 동안이고, 머리 정수리 부분이 튀어나오지 않게 표현된 점이 특이하다.
이 목조삼존불상은 조성연대가 정확히 밝혀져 있고, 법당 화재시에도 훼손되지 않고 무사히 보존된 불상이다. 또한 이 불상을 조각한 승려들이 17세기 중반에 전라도 각 지역 사찰의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이 시기 불상 연구의 기준작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