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차원에서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행동을 묵묵히 실천하는 행동을 환경운동이라고 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환경 보호·유지 행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부담을 외재화하지 않는 지속가능성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을 환경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운동은 환경 파괴의 실태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정부, 기업, 개인 등 각 행위자들이 환경에 부담을 주는 행위에 참여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환경 파괴 행위를 감시하거나 환경 파괴 정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함으로써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활동, 또는 개인의 활동에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운동이다.
현재 지구 환경은 급속도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로 말미암아 북극과 남극·만년빙의 결빙, 사막화, 일조량 감소, 집중 호우 등이 발생하고 있고, 그 외에도 대기·수질·토양·해양 오염 등으로 산성비, 토양 산성화, 산사태, 생물 다양성의 감소 등이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환경은 자기정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사회에서 자연에 방출하고 있는 부담은 환경의 자기정화 능력을 훨씬 넘어섰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부담을 자연에 방출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 개인의 소비, 여가 활동 등이 모두 환경에 부담을 외재화 하고 있다. 곧 특히 산업사회 이후 개인의 각종 생산, 소비 활동, 기업의 생산·유통 활동, 정부의 각종 정책 등에는 모두 부담의 외재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 부담의 외재화가 축적되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환경 파괴는 부메랑 효과로 막대한 피해로 되돌아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대한 문제는 환경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자연환경 내에 존재 가능하다. 그리고 환경은 유한하지만 사회는 팽창하고 있다. 사회의 팽창은 경제 성장률에 준하여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경제 성장률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요원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경 파괴는 팽창 자체, 성장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환경에 부담을 전가하면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부담의 외재화를 전제로 한 성장이 인간과 사회의 존재기반인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은 이에 대한 대안 모색을 위한 것이다. 곧 부담의 외재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경제 활동의 가능성, 곧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환경운동은 국경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환경문제는 전지구적인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환경운동은 국제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한 나라의 환경 문제는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지 않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담의 외재화를 부담의 내재화로의 전환은 어느 한 나라에서 실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동의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환경 단체에 의한 전지구적 통치는 따라서 매우 시급하고 절실하다. 전지구적 통치로 가기 위한 이전 단계에서 환경에 부담을 전가하는 각종 따라서 이에 대한 전 지구적인 관심, 토론, 대안 모색이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환경운동은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1980년대 전후에 시작되었다. 한국의 환경운동은 1981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서 출발하여, 1987년 민주화 이후로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는 시기에, 1991년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환경운동 단체가 결성되었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등이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환경운동 단체들이다.
환경운동은 환경 파괴의 실태를 널리 알리고, 그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이 필요하며, 다수의 참여 독려와 지지자 확보가 환경 운동의 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환경운동은 한편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지리산, 점봉산, 덕유산 보호 운동을 펼쳤고, 시화호 살리기, 새만금 간척사업을 일시적이나마 중단시켰었고, 동강댐 건설 중단, 핵폐기장 건설 반대, 천성산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환경의 중요한 이슈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여 왔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한 재검토를 정부에 요구하는 운동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한국의 환경운동은 지나치게 정부의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에 치우쳐 있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정책만이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고 정부가 환경정책을 변경시켰다고 해도 환경은 여전히 점점 더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환경운동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환경영향 평가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각종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고, 그것을 통해 대부분의 사업들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환경운동은 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소수의 환경운동 단체 활동가와 환경 문제 전문가 등 소수에 의한 운동 방향 설정에 의존하고 있음으로 해서 환경운동에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기회가 차단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세계경제 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시민들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환경운동은 여러 가지 여건이 매우 힘든 상태에서도 환경 보호·환경 유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특히 환경운동 단체의 활동가들은 시민들의 참여와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자신을 희생해가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들이 노력한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각종 정책 입안이나 실행 과정, 기업의 각종 활동에 대한 감시 등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오면서 환경운동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환경운동은 주로 정부와 기업 감시 활동을 위주로 하고 있다. 정부·기업·시민의 구분에 입각하여 환경운동은 정부 감시와 기업 감시 활동을 하는 시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환경운동은 시민 역시 정부와 기업 섹터에서 속하고 있고 시민들은 역시 환경 파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환경운동은 시민들의 참여 유도에 소극적인 편이라고 평가된다. 이는 한국의 환경운동이 주로 정부와 기업 감시에 중점을 주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한국의 환경운동은 환경 단체 활동가와 자문위원 소수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결정하고 회원들은 그 환경 단체를 지지, 지원하는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경 보호와 유지에 동참하는 시민들을 보다 늘리고 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환경운동의 방향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의 환경운동은 전 지구적 연대를 향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이 부족한 편이다. 주로 국내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대응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의 환경문제는 곧 외국의 환경문제이고 외국의 환경문제 역시 한국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이다. 외국의 환경운동 단체와 보다 긴밀한 협조를 통한 환경운동의 전 지구적 확산 역시 꾀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범세계적 연대를 통한 환경운동은 각종 환경 파괴의 결과들이 복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나타날 결과들을 보여주고 그 위급함을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를 통해 인류가 공동으로 택하여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널리 알리고 그에 대한 토론을 통해 환경 파괴를 축소시킬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