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흥국사 무사전(無私殿)에는 지장보살을 비롯한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 시왕(十王), 판관(判官), 장군(將軍), 동자(童子) 등 모두 21구의 조각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중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진광대왕, 초강대왕 등 다섯 존상의 복장에서 조성당시의 발원문(發願文)이 발견되었다. 지장보살상에서 나온 발원문의 내용이 가장 풍부하나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 어렵고, 나머지 발원문의 내용은 간략하다. 이들 발원문에 의하면, 수조각승 인균(印均)을 비롯하여 상의(尙儀), 자경(慈敬), 영간(灵侃), 지현(智玄), 선하(善河), 순옥(淳玉), 순일(淳一), 청학(淸學), 덕헌(德軒), 명담(明淡), 정봉(頂峯) 등 12명의 조각승이 참여한 이 불사는 1648년 6월에 완결되었다.
존상들을 조성한 수조각승 인균은 응원 · 인균파의 조각승으로, 1615년 김제(金堤) 금산사(金山寺) 독성상(獨聖像) 제작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하였다. 1622년 광해군비(光海君妃) 장열왕후(章烈王后)가 발원하여 자수사(慈壽寺)와 인수사(仁壽寺)에 봉안한 11존상을 조성하는 불사에도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1636년 구례(求禮) 화엄사 삼신불 조성 불사에서는 응원 · 인균파를 대표하여 응원(應元)과 함께 불상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인균이 응원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작풍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1630년대에 들어서인 것으로 추정되며, 그 최초의 작품은 1633년에 조성된 김제(金堤) 귀신사(歸信寺) 영산전의 소조삼세불좌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응원 · 인균파는 수조각승 인균을 중심으로 성열(性悅), 대오(大悟) 등의 조각승들이 활동하였으며, 점차 삼인(三忍), 자경(自敬) 등이 주도하게 되었고, 1650년대에는 삼인이 새로운 수조각승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응원, 인균, 삼인 등을 수조각승으로 하여 응원 · 인균파가 제작한 불상들은 묵중한 신체와 양감이 강조된 얼굴, 통통한 팔과 손이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다. 흥국사 무사전의 존상들에도 수조각승 인균의 작풍이 잘 나타나 있으며, 인균 작풍의 시기적인 특징들도 나타나 있다. 지장상의 얼굴은 양감이 매우 강조되어 있는 공통점이 있지만, 턱은 1636년에 제작된 화엄사 노사나상보다 상대적으로 좁아졌고, 발제선에서 턱에 이르는 양 볼의 선은 화엄사 노사나상이 수직선에 가까웠던 데 비해서 비교적 부드러운 곡선으로 바뀌었다. 또한 두 다리 사이의 옷주름은 화엄사 노사나상에서는 옷주름 사이가 성글며 하나하나의 주름이 넓었던 반면, 흥국사 지장상은 주름의 폭이 좁아지고 수가 늘어났으며, 조밀한 모습으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