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남원 극락암 석조 무량음성왕불 좌상 및 복장유물 일괄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어현동 극락암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상이다. 원래는 1702년 전라남도 순천시 동리산 대흥사에 봉안되었다가 20세게 초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복장발원문에 제작 시기와 봉안처, 존상의 명칭 등이 기록되어 있다. 불상은 넓적한 얼굴과 안정적인 몸체를 가지며, 전형적인 조선 후기 착의법을 따른다.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느낌을 준다. 오른쪽 가슴, 두 다리 사이, 왼쪽 정강이의 옷주름은 17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활동하였던 조각승 승일의 작풍과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어현동 극락암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상.
내용
이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의 전체적인 형태는 넓적한 얼굴과 안정적인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신체는 건장하며 당당한 느낌을 주는데, 몸체의 두께가 두꺼워 안정감이 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두었는데, 오른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위로 향하게 하였다. 이는 18~19세기 석상에서 많이 발견되는 간략화된 수인이다. 머리는 조선 후기 불상들이 약간 숙인 것과는 달리 세우고 있어 특이하다. 불상의 얼굴은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길이에 비해 폭이 넓다. 특히 두 눈은 얼굴 좌우에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사이에 폭넓은 코가 있다. 나발의 머리는 발제면에서 정상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발제면은 좁은 녹색 띠로 채색되어 있다. 머리 정상에는 낮고 작은 원통형의 계주가 있으며 육계와 머리의 경계면에는 반달형의 중간계주가 솟아 있다. 육계는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넓게 표현되었다. 발제면은 거의 일직선이며 턱도 뾰족하지 않아 전체 모습은 좌우로 긴 장방형을 띄고 있다. 이마 한가운데의 백호 조각을 제외하면, 나머지 눈썹, 수염 등은 모두 채색으로 처리하였다. 눈두덩은 약간 튀어나와 있으며, 그 하단부에 비교적 넓게 뜨고 있는 눈이 횡으로 음각되어 있다. 이마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은 우묵한 곳이 없이 동일면으로 이어져 있다. 불상의 복제는 ‘군의(裙衣)-승기지(僧祇支)-부견의(覆肩衣)-대의(大衣)’의 순서로 착용하는 조선 후기 불상의 가장 일반적인 착의법이다. 승기지는 가슴에서 무릎 정도까지를 가려주는 옷으로, 이 불상에서는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로 나타나 있다. 승기지 위에 입는 부견의는 네모난 보자기 형태의 옷인데 이 불상에서는 가슴 하단에 수직으로 내려져서 오른팔을 감싸고 있으며 오른팔 아래에서 왼쪽 어깨로 향하는 대의에 의해 대의 속으로 사라져 있다. 가장 바깥에는 왼쪽 어깨를 가리고 목을 돌아 오른쪽 어깨와 가슴 일부를 가려주고 오른팔의 아래를 지나 다시 왼쪽 어깨를 넘어 등 뒤로 넘겨진 변형편단우견의 대의를 입고 있다. 속옷인 군의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 불상이 제작된 당시의 불화를 참조하면 가장 안쪽에 치마 모양의 군의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불상의 옷이 다 그러하듯이, 옷은 매우 두꺼우며 옷 속에 감춰진 몸은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하였다. 옷주름은 뚜렸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조각승 수일의 작품에 나타나는 옷주름의 특징은 오른쪽 가슴, 두 다리 사이, 왼쪽 정강이에 잘 나타나 있다. 오른쪽 어깨 아래에는 어깨로부터 수직으로 내려진 대의 자락이 3~4개의 주름을 이루며 수평으로 상박부 쪽으로 이어져 있고, 오른쪽 가슴에는 끝이 뾰족하고 폭이 넓은 독특한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두 다리 사이의 옷주름은 좌우로 폭넓은 주름이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왼쪽 정강이에는 오른발 아래로부터 끝이 뾰족한 삼각형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오른쪽 가슴과 두 다리 사이, 그리고 왼쪽 정강이의 옷주름은 17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활동하였던 조각승 승일(勝一)의 작풍과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참고문헌
- 「17세기 말~18세기 초 조각승 수일의 조상 활동」(송은석, 『한국사상과 문화』70, 2013)
- 「제주도 정방사소장 순천 대흥사 석조여래좌상과 복장물」(최인선, 『문화사학』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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