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경상북도 문경시 대승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고려시대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복장유물이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좌우 보살상이 협시하는 구도로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상은 고려 후기의 특징을 보이는 반면 협시상들은 양식상 이미타상과 같은 시기가 아닌 조선 후기로 편년되어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불상 속 복장유물은 다라니류 3건 12점, 표면에 묵서가 적힌 향낭 1점이 있다. 특히 1301년에 인쇄한 다라니가 확인되어 고려시대 불교 조각사의 편년에 기준이 되는 불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의
경상북도 문경시 대승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고려시대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그 복장 유물.
개설
내용
특징
수인은 엄지와 약지를 맞댄 아미타불의 설법인이다. 이런 형태의 수인은 청양 운장암 금동보살좌상(보물, 1989년 지정)과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이 시기 불상의 대부분 손금은 卄의 모습이지만, 이 불상은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2003년 지정)등과 같이 井자형이다.
법의는 대의와 내의 등을 통견형식으로 착용하였다. 왼쪽 팔꿈치에 Ω형 주름이 나타나지 않거나, 마름모꼴 금구장식이 없는 승각기, 승각기 아래로 표현된 나비 매듭의 띠 자락은 각각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2008년 지정),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09년 지정),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08년 지정) 등과 비교된다. 한편 오른쪽 발목 아래의 八자형 주름과 왼쪽 무릎의 날카로운 잎사귀 모양의 주름은 14세기에 조성된 남원의 선국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2007년 지정)과 유사하다. 따라서 불상은 불두의 모습과 착의법 등을 통하여 고려시대 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복장 유물의 상당수가 이미 없어진 상태이긴 하지만, 불상 조성 당시에 궁궐도감 별장 정승설(丁承說)이 복장 납입을 위해 1301년에 특별히 인출한 다라니가 12점 발견되었다. 즉 1301년에 인출한 아미타삼존다라니(阿彌陀三尊陀羅尼) 1장(33×34.5㎝), 고려시대 1292년에 판각하고 1301년에 인출한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 8장(37.5×34㎝), 아자 범자원상 태장계만다라(阿字 梵字圓相 胎藏界曼茶羅) 3장(33×35.5㎝)이 그것이다. 판각과 인쇄 시기를 알 수 있는 이들 다라니는 서지학적으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의 편년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후기 불교조각 연구』(정은우, 문예출판사, 2007)
- 『문화재대관: 경상북도 편』(경상북도, 2003)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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