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부석사 자인당에 봉안된 석조불상은 세 구 가운데 한 구로, 이 석불은 원래 부석사 동쪽에 위치했던 동방사지(東方寺址)에서 1957년에 옮겨 온 것이다. 삼존불 가운데 석조비로자나불상 2구는 1963년 보물 영주북지리석조여래좌상으로 지정되었으며 석조석가여래좌상과는 얼굴의 인상이나 대의 처리 등이 다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양쪽의 비로자나불상에 비하여 중앙의 석조석가여래좌상은 얼굴의 인상, 대의 처리, 신체 비례 등이 다르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광배가 없고 불신과 대좌는 완전한 상태이다. 불상의 신체비례는 불신에 비해 불두가 크고 허리 길이가 짧지만 어깨와 무릎 폭이 넓어 앉은 자세가 안정감이 있다. 나발로 된 머리에는 정수리에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둥근 편으로, 아래로 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을 가지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배 앞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뜨리고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몸에는 양어깨를 감싸는 통견의 대의를 걸치고, 대의 안에 대각선으로 입은 내의가 있고 치마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앉은 무릎 사이에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부채꼴 옷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 기단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앙련(仰蓮)으로 표현된 상대는 연꽃잎에 장식을 더해 화려함을 더하고, 팔각의 중대에는 여래, 보살, 천인 등을 조각하였다. 특히 뒷면에는 반가좌의 석장을 든 지장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하대는 복련(伏蓮)으로 표현하였는데, 상대와 중대와 달리 장식성을 배제하면서 꽃잎 끝을 살짝 솟게 처리하였다. 팔각형의 기단석은 각 면에는 안상(眼象)으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 보살상과 천인, 사자 등을 조각하였다. 불상의 상호와 법의 표현, 대좌의 장식 등을 고려해 볼 때 경북 예천 청룡사의 석불 등과 유사하여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석사 자인당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한 석불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통일신라 석굴암 본존의 항마촉지인 계열을 따르는 중요한 석불으로, 내의와 꽃무늬 장식 등은 통일신라 후반의 지방 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유산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