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범화당(梵化堂, 梵華堂)이며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불화승이다. 화남총선, 경선응석, 금곡영환, 보암긍법, 한봉응작 등이 불화를 조성할 때 보조화승으로 참여하였다. 수화승으로 그린 작품은 1894년에 강원 평창 상원사 중대 신중도와 1905년에 인천 강화 전등사 삼성각 칠성도가 대표적이다.
윤익은 생몰년과 불화승(佛畵僧)이 된 배경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불화의 화기(畵記)와 사적기 등의 문헌기록을 통하여 활동 시기와 불화승의 계보를 밝힐 수 있다.
윤익은 1862년에 수화승 화남총선과 경기 의왕 청계사 괘불도를, 1883년에 인천 강화 전등사 노전 관음도와 정수사 산신도를, 1892년에 수화승 경선응석과 경기 남양주 흥국사 나한도를, 1894년에 수화승으로 강원 평창 상원사 중대 신중도를, 1895년에 수화승 금곡영환과 서울 봉은사 영산전 나한도와 수화승 상규와 신중도를 조성하고, 수화승 보암긍법과 평창 상원사 중대 사자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을 개금하였다. 1897년에 수화승 경선응석과 남양주 불암사 십육나한도를, 1900년에 수화승 보암상월과 목아불교박물관 소장 아미타후불도를, 1901년에 수화승 경선응석과 전남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삼세불도(아미타불)와 같은 해 같은 사찰에서 편수(片手)로 대웅보전 삼장도를, 모화(模畵)로 감로왕도, 칠성도, 신중도를, 수화승 한봉응작과 서울 봉원사 괘불도를, 수화승으로 남양주 불암사 독성도를, 1902년에 수화승 경선응석과 경기 고양 흥국사 괘불도를 조성하였다. 그의 마지막 기년명 불화는 1905년에 강화 전등사 삼성각 칠성도이다.
화기와 사적기 등을 중심으로 윤익의 생애를 살펴보면, 윤익은 1840년을 전후하여 태어나서 1850년대 불화 제작의 수련기를 거친 후, 1862년 보조화승으로 경기 의왕 청계사 괘불도를 시작으로 불화를 제작하였다. 1894년에 수화승으로 강원 평창 상원사 중대 신중도를 조성하였다. 그는 화남총선, 금곡영환, 보암긍법, 경선응석 등과 같이 불화를 제작하였다. 그가 불화 제작에 참여한 사찰은 남양주 흥국사와 불암사, 평창 상원사 중대, 서울 봉은사, 해남 대흥사, 강화 전등사 등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