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내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1998년 개관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설립목적은 한국 근대 미술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체계화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적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덕수궁미술관은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근대 미술뿐만 아니라 아시아 및 서구 근대미술을 함께 다루고 있다. 기획전시, 소장품전시를 비롯하여 근대 미술 관련 조사연구, 출판, 교육, 학술행사와 같은 여러 활동을 통해 미술의 물적, 인적 교류를 도모하고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덕수궁 석조전 서관)은 1933년 덕수궁이 일반에게 공개된 이후 황실이 조선미술전람회의 일환으로 조선미술품을 진열할 수 있는 박물관을 짓기로 결정한 결과 설립되었다. 1936년 8월 21일 덕수궁 석조전 기공식을 개최하였는데 당시 총예산 30만원을 들여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건물로서 설계자는 조선은행 건축 감독자로 일한 바 있는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가 담당하였다. 1937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였으나 1938년 2월에 덕수궁 석조전이 완성되어 건평 356평, 지상 3층, 총 1,929평(3,428㎡)으로 화강암과 인조석을 섞어 의석조로 지었다. 좌우 대칭형 건물로서 중앙부는 코린트식 기둥의 현관이 덧붙여진 형식이다. 창경궁 소장 조선미술품들이 3월 25일부터 옮겨지기 시작하여 5월까지 진열이 완료되었고 이후 덕수궁 신관은 이왕가박물관, 구관은 덕수궁미술관(현 석조전)으로 불렸다. 광복 후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유엔 국제연합한국위원단이 사용하였다. 1954년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73년 7월 국립현대미술관이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이전함으로써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신축 이전한 후 국립국어연구원이 입주하여 사용하다가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개관하여 현재까지 사용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1938년 개관한 이후 최초의 근대식 박물관 건물로서 많은 전시가 개최되었다. 초기에는 조선시대 미술품이 전시되었으나 1945년 해방기념문화대축전미술전람회를 시작으로 하여 1950년대 이후 현대 미술 전시회가 개최되어 한국근현대미술사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1970년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개최됨에 따라 아카데믹한 화풍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였지만 이와 반대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반대하는 ‘1960년 미술가협회’, ‘벽동인’의 작가들이 덕수궁 벽에 자신들의 작품을 걸어 기성 미술계의 권위에 대한 도전의식을 내보이기도 하였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설립되면서 개최된 ‘다시찾은 근대미술’을 시작으로 하여 2002년 ‘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 2003년 ‘드로잉의 새 지평전’, 2005년 ‘김종영’, 2007년 ‘남농허건’, 2009년 ‘권진규’, 2010년 ‘아시아 리얼리즘’, 2012년 ‘이인성’ 등과 같은 전시를 개최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연 4∼5회 국내외 근대미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2012년 3월 3층 전시실과 로비 천창 부분을 개보수 공사를 통해 건물이 건축될 당시 원래 구조와 형태로 되돌렸다.
1998년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한국근대미술전, 외국미술의 블럭버스터 전 등과 같은 전시활동, ‘근대미술연구’(2004년∼2007년)와 같은 학술지 발간, 국제학술행사 등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미술감상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였다. 또한 이러한 활동은 미술사가, 비평가들과 같은 전문가들에게 조사연구의 기초를 제공하고 직간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한국근현대미술사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