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 출신으로 1930년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후 공주화회를 조직하여 1931년 전람회를 개최하였고 1933년부터 목일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 국전 추천작가를 역임하였고, 1962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초하의 금강」으로 입선하였고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공주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1년공주화회를 결성하였고, 1933년 극예술연구회의 연극 「무기와 인간」에서 장치조명을 담당하였다. 1933년 김천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였고 1935년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자인 최송설당 여사 동상 설립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1934년구본웅, 길진섭, 김용준, 이종우, 황술조와 같이 도쿄미술학교 출신 유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된 목일회(牧日會)를 결정하여 1934년 5월 화신백화점에서 첫 번째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에서 단체의 명칭이 반일 성격을 지닌 것으로 판단하여 명칭을 변경하도록 압력을 넣어 이후 ‘목시회(牧時會)’로 바꾸었다. 이후 목일회는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지속되다가 해체되었다. 1949년경향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소설 『청춘산맥』에 삽화를 제작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김정렬 공군참모총장과 서울대 장발 학장의 주도 하에 김병기, 이순석, 장우성 등과 공군미술대의 소속 화가로 활동하였다.
1955년부터 한국 미술의 질적 향상, 순수한 제작 태도, 신진작가 지원, 국제미술문화와의 제휴를 도모하기 위한 ‘한국미술가연합준비위원회’를 서세옥, 김병기 등과 함께 발족하였고 이후 한국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창작미협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이후 1964년까지 창작미술협회전에 꾸준히 출품하였다.
1949년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부임하여 196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0년이승만 하야를 요구하는 ‘4.25 교수 시국선언’에 참가하였다.
2010년 4.19 혁명 기념 건국포장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