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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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 그림. 고승진영 · 영탱 · 영정 · 진영.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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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진영, 영탱, 영정, 진영(眞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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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 그림. 고승진영 · 영탱 · 영정 · 진영.
개설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으로 진영(眞影) 또는 영정(影幀)이라고 한다. 사찰에 가면 조사당 또는 진영각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여기에는 각 사찰과 인연 있는 스님들의 초상화를 봉안한다.

내용 및 특징

진영은 스승이 입적한 뒤 존경과 추모의 정을 담아 스승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제작하거나, 사자상승(師資相承: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는 것)의 증표로서 법통(法統)의 확인과 수계(授戒)의 목적, 역대 스승의 체계를 세움으로써 종파와 사찰의 입지를 분명히 하고 유대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조성되었다.

일반 초상화와 달리 불교의 조사신앙을 표현한 종교미술이다. 선사가 입적(入寂)하면 화가를 불러 진영을 그리거나 살아 있을 때 제작한 진영을 준비하고, 부도를 만들어 다비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한다. 이후 진영은 사찰 내 조사당, 진영당(眞影堂), 영각(影閣), 영자전(影子殿) 등에 모셔지며, 해마다 돌아가신 날짜에 맞추어 법맥을 이룬 불가의 사법제자와 신도들이 모여 선사를 기리는 제(祭)를 행한다. 역사 깊은 사찰의 진영각에는 창건주와 역대 고승들의 진영 수십여 점이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영이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삼국유사』‘홍법편’에 흥륜사에 이소상(泥塑像)으로 만든 아도, 자장, 원효, 의상, 혜공 등의 십성(十聖)이 모셔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는 형상을 재현한 소조상(塑造像)이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진영 제작은 선종이 보급된 통일신라 말기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고려시대의 여러 문헌자료에는 원효, 의상과 함께 도의, 진감, 도선 등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산조(開山祖)와 선승의 진영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원효(元曉, 617∼686)의 진용(眞容)을 모신 곳을 원효방(元曉房)이라 불렀으며, 고려시대에는 보제영당(普濟影堂), 선각진당, 나옹진당 등 고승의 이름을 딴 전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조사당, 삼성각, 국사전 등에 고승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초기에는 왕조 개창의 공이 컸던 무학(無學, 1327∼1405)과 스승인 나옹(懶翁, 1320∼1376), 지공(指空, ?∼1363)의 진영이 다수 조성되었으며, 후기에는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서산대사(西山大師), 사명당(四溟堂) 등의 진영 조성이 활발하였다. 18세기 이후에는 특정 종단이나 종파의 개념은 흐려졌지만 각 사찰을 중심으로 해당 사찰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고승이나 주지의 진영 등이 제작되었다.

고승 진영의 대부분은 단독상이지만, 20세기 초에 제작된 대흥사「십육강사도(十六講師圖)」와 같이 군상(群像)도 있다. 또 대부분의 진영은 전신상이지만 반신상도 몇 점 있다. 자세를 기준으로 보면 의좌상(倚座像)과 평좌상(平座像)이 있으며, 의좌상은 다시 의자에 발을 늘어뜨려 발판에 얹은 형식과 의자 위에서 가부좌한 형식, 평좌상은 돗자리나 방석을 깐 바닥에 가부좌한 상과 선상(禪床) 위에 가부좌한 상으로 구분된다. 19세기 후반에는 인물 대신 법명과 당호가 적힌 위패를 그려 넣은 진영도 조성되었다.

일반 불화는 경전에 의거하여 신앙 내용을 도상화 하였으므로 한 사찰에 같은 유형의 그림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고승의 진영은 종파의 시조나 그 절의 창건주 등 승려 개인마다 하나의 그림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사찰 내에서도 다수의 진영이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김정희, 돌베개, 2010)
『깨달음의 길을 간 얼굴들 ­ 한국고승진영전』(직지성보박물관, 2000)
집필자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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