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찬진연도는 조선 시대 대표적인 궁중 예연인 진찬과 진연을 그린 기록화이다. 조선 시대에 대표적인 궁중연향은 진연과 진찬이다. 진연은 주로 왕의 등극 주년과 왕실 어른의 생신을 축하하는 예연이다. 진찬은 장수를 누린 왕대비와 대왕대비를 위한 연향이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진연도는 「진연도첩」이다. 이는 1706년 숙종 즉위 30년을 기념하여 인정전의 진연을 그린 것이다. 진찬도로는 화성행행도팔첩병의 한 첩인 「봉수당진찬도」가 유명하다. 이는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아 그린 그림으로 필치와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궁중연향에는 법전(法典)이나 예전(禮典)에 명시된 공식적인 예연과 곡연(曲宴)이나 사연(賜宴)같은 비공식적인 연향이 있다. 조선시대 궁중예연은 채붕(綵棚), 진풍정(進豊呈), 진연, 진찬, 진작(進爵), 회작(會酌), 회례연(會禮宴) 등의 이름으로 설행되었는데 그 개념과 설행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채붕이나 진풍정에 대해서 법전에 명시된 내용은 없으나 조선 초기에 잦은 설행이 있었다. 성종대에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궁중연향으로 진연이 규정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고려시대 유습으로 채붕과 진풍정이 더 성행하였으며 진연과는 개념의 구분 없이 설행되었다.
진풍정은 점차 시행되는 예가 줄어들었으며 중종 무렵부터 진연은 외연(外宴), 진풍정은 왕대비․대왕대비 등 내전에 올리는 내연(內宴)의 의미로 구분되었다.
진연이 진풍정보다 물자와 참여 인원을 줄여 간략하게 치르는 작은 규모의 연향이라는 개념은 1657년(효종 8) 왕대비에게 올리는 진풍정을 진연으로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확립되었다. 숙종대까지 풍정과 진연을 놓고 연향의 규모와 명칭을 논의하는 일이 없지 않았으나 1706년(숙종 32) 숙종의 즉위 30년을 축하하는 진연을 거행한 뒤로는 영조대까지 줄곧 궁중연향은 진연으로 치러졌다.
사실상 『경국대전』에 규정된 정기적인 진연은 임진왜란 이후 거의 행해지지 않았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왕명에 의해 이 유명무실한 진연이 모두 폐지되고 진연은 주로 왕의 등극 주년(週年)과 왕실 어른의 생신을 축하하는 예연으로서 거행되었다.
19세기의 궁중연향은 대부분 진찬이었다. 19세기에는 장수를 누린 왕대비와 대왕대비에 대한 연향이 많았는데 이때마다 1795년(정조 20) 진찬으로 설행되었던 혜경궁의 회갑연에 전거를 두었기 때문이다.
진연은 대한제국기 고종에 대한 연향에서 부활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를 통관할 때 명분상으로나 실제상으로나 대표적인 궁중연향은 진연과 진찬이라고 할 수 있다.
현전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진연도는 1706년(숙종 32) 8월 28일 숙종의 즉위 30년을 기념하여 100여 년만에 부활한 인정전의 진연을 그린 「진연도첩(進宴圖帖)」이다. 18세기의 또 다른 진연도로는 1710년 4월 25일 숙종의 환후가 회복되고 성수(聖壽)가 50세 됨을 기념한 진연을 그린 「숭정전진연도(崇政殿進宴圖)」이다. 이 두 그림은 18세기의 진연 설행 양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이후 진연도는 1901년 7월 고종의 오순(五旬)을 경하하기 위해 황태자가 올린 예연을 그린 「고종신축진연도병(高宗辛丑進宴圖屛)」, 1902년 4월 고종이 51세로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고종임인진연도병(高宗壬寅進宴圖屛)」, 같은 해 11월 고종의 어극 40년을 축하하기 위한 진연을 그린 「고종임인진연도병(高宗壬寅進宴圖屛)」이 있다.
18세기의 진찬도로는 1795년(정조 19) 「화성행행도팔첩병(華城幸行圖八疊屛)」의 한 첩으로서 화성행궁(華城行宮)에서 벌어진 혜경궁의 회갑연을 그린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가 유일하다.
19세기의 진찬도는 순조의 보령 사순(四旬)과 등극30주년을 기념하여 1829년(순조 29) 2월에 치러진 진찬을 그린 「순조기축진찬도병(純祖己丑進饌圖屛)」, 1848년(헌종 14) 대왕대비(순원왕후 김씨)의 육순을 기념한 「헌종무신진찬도병(憲宗戊申進饌圖屛)」, 1868년(고종 5) 신정왕후의 회갑을 기념한 「고종무진진찬도병(高宗戊辰進饌圖屛)」, 1887년(고종 24) 신정왕후의 팔순을 기념한 「정해진찬도병(高宗丁亥進饌圖屛)」, 1901년 5월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71세를 경하하는 진찬을 그린 「고종신축진찬도병(高宗辛丑進饌圖屛)」 등이 있다. 19세기 진찬․진연도는 모두 진찬소나 진연청의 계병(稧屛)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