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1월 13일∼ 1932. 11. 12일『매일신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삼대(三代)』의 속편에 해당되나 독립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신문 연재소설의 특성상 회장체(回章体)로 되어 있어 소제목을 붙여 장을 나누었다. 전부 53개 항목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집필 방향을 구성하는 데 유용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이야기의 종결을 짓지 않는 미해결의 구성으로 되었다. 『삼대(三代)』의 인물 배치와 시대 배경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으며, 중요한 인물들이 이름이 바뀐 채 등장한다.
『무화과(無花果)』는 이원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원영은 조부의 재산을 상속받아 회사를 운영하여 수입을 얻고 그것을 신문사에 투자하며 친구들과 주변인들을 돕는 데 많은 돈을 쓴다. 원영은 만주에서 ‘조직’에 몸담고 있는 친구인 동욱을 돕는다. 소설 속에서 ‘주의자’들의 ‘운동’은 무산자들이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유한계급의 도움으로 행하는 일종의 ‘이념놀이’로 나타나 그들의 투쟁은 공허하게 드러나고 작가는 이러한 점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등장인물들은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타락한 시대의 논리에 따라 일그러진 삶을 사는데, 이러한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긍정적 인물들을 통해 나타난다. 등장인물 중 유일한 무산자 계층이지만 이념을 떠나 ‘기술’을 바탕으로 성공하길 꿈꾸는 완식과, 사회주의자로서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봉사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봉익, 부유한 삶 속에서 안주하던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진실한 사랑을 택해 중도에 그만 둔 동경 유학을 떠나는 문경은 구시대의 질서를 벗어나 자신만의 내적 동기에 따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하에서 이들이 타락한 시대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염상섭의 『무화과』는 작가적 양심과 자기가 속한 현실사회에 대한 충실한 인식을 바탕으로 당시 식민지 사회의 실상을 예리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1930년대 자본을 소유한 중산층의 경제양식이 변화되고 봉건주의적 수직 체계가 붕괴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인물을 창조하고 이들이 사회적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것을 역설한다. 또한 『삼대』의 속편으로 조부대(祖父代)의 생활에 이어 자손(子孫)의 대(代)를 보여주는 장편소설 형식으로 시대적 환경 속에 인물의 전형성(典型性)을 구축했다는 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