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대원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무신집권자 최우(崔瑀)는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안무별감(按撫別監) 박문수(朴文秀)와 김공정(金公鼎) 등을 파견했다. 승려 우본이 노군도령(奴軍都領) 영사(令史) 지광수(池光守)와 더불어 정부의 회유책을 수용하자 최우는 이들을 개경으로 불러들여 포상하였다. 그 결과 지광수는 무관직인 교위(校尉)에, 우본은 충주 대원사(大院寺) 주지에 임명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우본은 노군을 규합하여 충주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는데, 우본은 재지세력 및 상급 승려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최우정권은 상장군 이자성(李子晟)에게 3군(三軍)을 이끌고 토벌하게 하였다. 이 때 노군의 우두머리 중에서 몇 사람이 달천(達川)에서 정부군을 만나 항복을 제의해왔다. 정부군이 그들의 항복을 수락하자 그들은 주모자 우본을 살해하였으며, 충주 노군의 반란도 최종 진압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강재광, 경인문화사, 2011)
- 『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윤용혁, 혜안, 2011)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고려대몽항쟁사연구』(윤용혁, 일지사, 1991)
- 「대몽항쟁 주체의 성격에 관해서: 별초와 초적의 의병적 활동을 중심으로」(장세원, 『군산실업전문대학 논문집』9, 1986)
- 「충주 노군의 난과 대몽항쟁」(손홍렬, 『호서문화연구』1,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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