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후반, 공통된 문학 이념을 확립하려는 목표가 외부적 압력으로 차단되자, 문단에서는 이를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문학의 자율적 속성을 밝히거나 문학 장르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였다. 비평가들은 전환기적 상황 속에서 침체된 문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소설론을 전개하였다. 임화의 본격소설론이나 백철의 종합문학론, 최재서의 가족사 연대기 소설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이 시기 작가나 비평가들의 관심은 장편소설론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일정한 소재의 문학적 가능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형식을 발견하려는 작가들의 개인적 노력과 소설미학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평가들의 노력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 김남천이 주장한 문학론이 소설개조론이다. 비평가이자 작가로서 김남천은 구체적인 창작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에 대한 이론적 모색으로 제출한 것이 바로 소설개조론이다. 소설개조론은 풍속론의 연장으로 가족사 연대기라는 양식을 통해 장편소설을 살리자는 것이 핵심논지이다.
김남천의 소설개조론(로만개조론)은 카프 해체 이후 더욱 강화된 일제의 군국주의와 사회적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문학론으로 등장하였다. 소설의 존재 의의를 현실 반영에서 찾을 때 일제의 전시체제 돌입이라는 시대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도 일목요연한 반영은 단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장편소설에서나 실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장편소설 역시 조선적 상황에서는 기형적으로 발전해 왔으므로 소설이 소설로서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개조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소설개조론의 출발점이었다.
김남천의 소설론은 고발문학론을 시작으로 모랄론―풍속소설론―소설(로만)개조론―관찰문학론으로 전개되었다. 이중 김남천이 작가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소시민성을 폭로하여 붕괴된 주체를 재건하기 위해 주장한 고발문학론을 강화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모랄론이었다. 이어 모랄 개념의 발전된 형태로 ‘풍속’ 개념을 도입하여 모랄과 풍속을 구체적인 창작방법으로 정화하여 주장한 것이 바로 ‘소설개조론’이다. 김남천은 ‘풍속’을 가족사와 연대기에 구현시킴으로써 전형적 정황 묘사가 가능하고, 묘사의 핵심에 합리성과 과학적 정신이 보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한 시대의 전형을 구현하는 것이 가족사 연대기 형식에 구현된 풍속을 통해 가능하므로, 이를 통해 장편소설을 개조하자고 역설한 것이다.
김남천이 처음으로 ‘로만’ 즉 소설의 개조를 언명한 글은 「조선적 장편소설의 일 고찰―현대 저널리즘과 문예와의 교섭」(『조선일보』 1937.10.19-10.23)이었다. 그는 저널리즘과의 교섭을 통해 장편소설의 성격을 밝혀보겠다고 전제하며, “저널리즘의 조선에 있어서의 특수성격이 신문의 학예면, 신문소설 등을 거쳐서 특히 문예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조선의 장편소설이 저널리즘 가운데서도 특히 대(大)신문에 의하여만 발표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상업주의로 인해 왜곡되고 오해된 시사성과 비속한 추상적 대중에의 무원칙한 추수’가 로만을 타락시킨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로만의 이론을 정당히 파악하여 그의 개조를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김남천이 장편소설 양식의 문제를 거론하게 된 이유는 “현대와 같은 고민에 있어서는 리얼리즘에 관한 일반적 이해는 소설, 특히 장편소설이란 장르에 가장 통용된다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종전의 소설론이 공전을 거듭해온 이유도 장편소설의 이론을 단편소설에 적용하려는 무리한 노력 때문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 엥겔스, 루카치 등으로부터 수용한 리얼리즘을 ‘대상의 전체성’이 아닌 ‘단일성’을 추구하는 단편소설에 무리하게 적용함으로써 단편답지 않은 단편소설을 생산하게 되고 말았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한다. 즉 김남천은 고발문학이 ‘로만의 개조’까지 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리얼리즘이 가장 훌륭하게 구현될 수 있는 문학형태는 오직 장편소설”(「장편소설에 대한 나의 이상」)이라고 파악하였다. 즉 그가 현대 작가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바로 리얼리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김남천은 역사 발전의 불균등성과 문학예술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와 루카치의 장편소설 장르에 대한 연구에 힘입어 조선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리에 입각한 장편소설의 양식을 탐색하려는 것이었다. ‘개인적 행동의 사회적 근인(根因)’을 구명하려는 노력이 그의 고발문학론이며, 그 연장으로 “시민사회의 특수적인 제 모순을 담기에 가장 적당한 표현형식”인 장편소설의 양식을 수립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김남천은 임화의 본격소설론이나 백철의 종합문학론 등이 당대 문단현실 타개에 뚜렷한 통로를 마련해 주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소설 개조의 방향을 “풍속 개념의 재인식과 가족사와 연대기에의 길”이라고 제시하였다. 이때 ‘풍속’이란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는 사회적 규범”이자 도덕의 내용을 이루고 사상적 본질을 갖춘 것으로, 세계관을 드러내는 중간항적 의미를 지닌다. 또 ‘모랄’이란 “완전히 주체화되어 일신상의 근육으로 감각화된 사상이나 세계관의 형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모랄론과 풍속론의 통합으로 제시한 김남천의 소설개조론은 엥겔스의 “리얼리즘은 세부의 진실성 외에도 전형적 환경에서의 전형적 인물들을 진실하게 재현하는 것”이라는 정의 중에서 ‘세부의 진실성’과 ‘전형적 환경’의 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즉 ‘전형적 인물’에 대한 논의는 그저 작가의 의도나 사상이 인물 속에 내면화되고 시대정신을 체현한 ‘인물로 된 이데’를 창조해야 한다는 주장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김남천은 당시 가속화되어 가는 일제 파시즘체제 속에서 작가정신의 위기나 소설문학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장편소설의 양식 탐구에 전념하고 이를 통해 리얼리즘을 실현하려는 실천적 노력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김남천은 자신이 주장한 소설개조론에 입각해 전작 장편 「대하」를 발표하였고, 이후 이기영의 「봄」이나 한설야의 「탑」, 김사량의 「낙조」 등 가족사 연대기 소설 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개조론은 침체에 빠진 문단에 어느 정도 활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현실성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남천의 소설개조론은 가족사 연대기라는 매우 구체적인 소설 창작의 방향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으로, 고발문학론을 시작으로 그가 전개해 온 이론적 노력의 체계화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모랄과 풍속을 갖고 가족사 연대기를 소설 속에 구현하는 방법만으로 전형이 창조되기는 어려울뿐더러, 이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전형’을 ‘방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양식’이나 ‘소재’로서 생각하였고, 이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부족하였다. 김윤식은 김남천의 소설개조론이 발자크의 사회소설을 본보기로 하는 풍속소설에 대한 구상 내지 기획이었으나, 리얼리즘 소설미학 특히 ‘전형론’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이론 구성과 작품창작에서 소기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