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아버지는 집의(執義)를 지낸 정호(鄭瑚)이다. 장인은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축(安軸)이다. 아들로는 의정부찬성(議政府贊成) 정구(鄭矩), 한성부윤(漢城府尹) 정부(鄭符) 등이 있다.
충목왕∼공양왕 때 별장(別將)·판관(判官)·상주목사(尙州牧使)·대사헌(大司憲)·감찰대부(監察大夫)·중대광(重大匡)을 역임하고 봉원군(蓬原君)으로 책봉되었다. 1366년(공민왕 15)에는 정양생의 딸이 왕의(王義)·안극인(安克仁) 등의 딸과 함께 공민왕의 새 왕비 후보로 선발되었다. 공민왕 때 정양생은 이색(李穡)과 교류하여 친분을 쌓았다. 한편, 장인인 안축이 강릉도존무사(江陵道存撫使)로 재직했을 때인 1330년 5월부터 1331년 9월까지 지은 시문을 모아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시문집을 청주(淸州)에서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대관(臺官) 임무를 주로 맡아보다가 1392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