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림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호군, 대호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신돈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유배 중에 죽임을 당한 무신 · 공신.
이칭
이칭
이원림(李元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68년(공민왕 17)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교동왜적추포부사|호군|대호군
관련 사건
홍건적 제2차 침입|신돈제거모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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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호군, 대호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신돈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유배 중에 죽임을 당한 무신 · 공신.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일명 이원림(李元琳)이라고도 한다. 공민왕 때 호군(護軍)·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한 고위 무신이다. 1358년(공민왕 7) 5월 왜구가 교동(喬桐: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지역을 침략하였을 때 교동왜적추포부사(喬桐倭賊追捕副使)로 임명되어 왜적을 방어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10월 고려에 침입하여 개경을 함락시킨 홍건적(紅巾賊)을 반격하여 개경을 다시 수복하였다. 이러한 공으로 1363년 윤3월에는 황상(黃裳)·한방신(韓方信)·안우경(安遇慶) 등과 함께 경성수복일등공신(京城收復一等功臣)에 책봉되어 벽 위에 자신의 초상이 그려지고 토지와 노비를 지급받았다. 1368년 10월에 김정(金精)·김흥조(金興祖) 등과 함께 신돈(辛旽)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유배 중에 죽임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신돈과 그의 시대』(김창현, 푸른역사, 2006)
「고려 공민왕대 중엽의 정치적 변동」(민현구, 『진단학회』107, 2009)
「홍건적의 침입에 관한 고찰」(김정의, 『군사』17,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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