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일명 이원림(李元琳)이라고도 한다. 공민왕 때 호군(護軍)·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한 고위 무신이다. 1358년(공민왕 7) 5월 왜구가 교동(喬桐: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지역을 침략하였을 때 교동왜적추포부사(喬桐倭賊追捕副使)로 임명되어 왜적을 방어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10월 고려에 침입하여 개경을 함락시킨 홍건적(紅巾賊)을 반격하여 개경을 다시 수복하였다. 이러한 공으로 1363년 윤3월에는 황상(黃裳)·한방신(韓方信)·안우경(安遇慶) 등과 함께 경성수복일등공신(京城收復一等功臣)에 책봉되어 벽 위에 자신의 초상이 그려지고 토지와 노비를 지급받았다. 1368년 10월에 김정(金精)·김흥조(金興祖) 등과 함께 신돈(辛旽)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유배 중에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