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서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관, 판사천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정치도감관|판사천감사
관련 사건
기철일파 숙청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관, 판사천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충목왕∼공민왕 때 정치도감관(整治都監官)·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판사천감사(判司天監事)를 역임하였다. 1347년(충목왕 3) 6월 정치도감(整治都監)의 관리로 개혁정치에 참여할 때 저항세력의 반발로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이문소(理問所)에 의해 도리어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1356년(공민왕 5) 6월 국왕의 명령으로 남경(南京: 경기도 양주)의 지세를 살펴보았다. 1358년 9월 유숙(柳淑)·우필흥(于必興)과 함께 국왕의 명령을 받아 도읍지로서의 수안(遂安: 황해북도 수안군)·곡주(谷州: 황해북도 곡산군)지역의 지세를 답사하였다. 1359년 6월 김득배(金得培)·김원봉(金元鳳) 등과 함께 기철(奇轍)일파를 숙청한 공적을 인정받아 주기철이등공신(誅奇轍二等功臣)으로 책봉되고 토지 등을 지급받았다. 1369년 8월 태백성(太白星)의 이상 현상을 국왕에게 아뢰어 공민왕의 삼소(三蘇: 평양·금강산·충주지역) 순행계획을 정지시켰다. 1370년 3월에는 염흥방(廉興邦)과 함께 국왕의 명령으로 의릉(毅陵: 충숙왕릉)의 새로운 터를 물색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정치도감 운영의 제양상에 대한 재검토」(이강한, 『역사와 현실』67, 2008)
「정치도감의 성격」(민현구, 『동방학지』23·24, 1980)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