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서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관, 판사천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기철일파 숙청
  • 본관미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치도감관|판사천감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최영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정치도감관, 판사천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충목왕∼공민왕 때 정치도감관(整治都監官)·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판사천감사(判司天監事)를 역임하였다. 1347년(충목왕 3) 6월 정치도감(整治都監)의 관리로 개혁정치에 참여할 때 저항세력의 반발로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이문소(理問所)에 의해 도리어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1356년(공민왕 5) 6월 국왕의 명령으로 남경(南京: 경기도 양주)의 지세를 살펴보았다. 1358년 9월 유숙(柳淑)·우필흥(于必興)과 함께 국왕의 명령을 받아 도읍지로서의 수안(遂安: 황해북도 수안군)·곡주(谷州: 황해북도 곡산군)지역의 지세를 답사하였다. 1359년 6월 김득배(金得培)·김원봉(金元鳳) 등과 함께 기철(奇轍)일파를 숙청한 공적을 인정받아 주기철이등공신(誅奇轍二等功臣)으로 책봉되고 토지 등을 지급받았다. 1369년 8월 태백성(太白星)의 이상 현상을 국왕에게 아뢰어 공민왕의 삼소(三蘇: 평양·금강산·충주지역) 순행계획을 정지시켰다. 1370년 3월에는 염흥방(廉興邦)과 함께 국왕의 명령으로 의릉(毅陵: 충숙왕릉)의 새로운 터를 물색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정치도감 운영의 제양상에 대한 재검토」(이강한, 『역사와 현실』67, 2008)

  • - 「정치도감의 성격」(민현구, 『동방학지』23·24, 198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