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정방소경, 예부직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양(咸陽). 신돈(辛旽)의 측근세력으로 활동하다가 죽임을 당한 행주기씨(幸州奇氏) 기현(奇顯)의 동생인 기자수(奇子秀)의 사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공민왕 때 정방소경(政房少卿)·예부직랑(禮部直郞)을 역임하였다. 한 때 중랑장(中郞將) 하영홍(河永洪)의 봉록을 속여 받다가 감찰사(監察司)의 탄핵을 받았으나, 신돈의 보살핌으로 관직에 다시 나갔다. 1366년(공민왕 15) 9월 국왕이 신돈의 원찰인 낙산사(洛山寺)로 행차하였을 때 신돈의 밀명을 받은 다음, 모니노(牟尼奴: 우왕)가 공민왕의 후사를 이을 수 있도록 하는 축원문을 지어 낙산사의 관음보살(觀音菩薩)에 기원하였다. 1371년 8월 홍영통(洪永通)·김횡(金鈜)·허완(許完) 등과 함께 신돈의 세력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씨족원류(氏族源流)』
- 『신돈과 그의 시대』(김창현, 푸른역사, 2006)
- 「신돈 당여 가문의 조상 감추기와 포폄론」(이정란, 『한국사학보』27, 200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