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271년 일본의 가마쿠라막부에서 삼별초의 진도(珍島) 정부가 보낸 외교문서를 12조목으로 정리한 문서. 외교문서.
편찬/발간 경위
당시 일본에서는 1268년과 1271년에 외교문서를 보낸 것이 몽골[蒙古]과의 관계 등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두 정부, 즉 몽골과 강화(講和)한 원종의 정부와 그에 반기를 든 삼별초의 진도 정부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격이 다른 두 주체를 파악하지 못함에 따라, 두 외교문서가 몽골에 대한 태도 등에서 상반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을 조목별로 정리한 것이 「고려첩장불심조조(高麗牒狀不審條條)」이다.
서지적 사항
내용
이전의 고려 국서(1268)에서는 몽골의 덕을 칭송하며 사대(事大)의 군신례(君臣禮)를 맺었다고 하였는데, 이번의 국서(1271)에서는 몽골을 야만적인 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등의 상위 점, 폭풍에 표류한 자의 호송, 호병(胡兵) 수 만을 청군(請軍)한 것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고대중세고문서연구』상(노명호 외, 2000)
- 『한국상대고문서자료집성』(이기백, 일지사, 1987)
- 「‘고려첩장불심조조’의 재검토」(유영철,『한국중세사연구』창간호, 1994)
- 「삼별초의 천도항몽운동과 대일통첩」(이우성,『한국의 역사상』, 창작과비평사, 1982)
- 「삼별초의 대몽항전과 지방군현민」(김윤곤,『동양문화』21·22, 1981)
- 「文永八年來日の高麗使について-三別抄の日本通交史料の紹介-」(石井正敏,『史料編纂所報』12, 東京大, 1978)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