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은 시작과 동시에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청년세대의 일탈과 반항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부상하였다. 따라서 록은 반문화[counter culture]의 상징, 청년세대의 음악적 헤게모니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청년세대 반항정신의 계기적 폭발이라는 자체의 역사를 가지고, 반전운동 세대의 저항정신과 결합하면서 대중음악 내에서 ‘진지한’ 음악이라는 가치를 지녀왔다. 한국 록 음악 역시 ‘젊음’이라는 가치는 공유하고 있으나, 청년세대의 저항은 동 시대의 통기타 음악과 이를 계승한 민중가요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미의 록 음악과는 다른 전개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의 록 음악 수용은 1960년대 전후 트위스트라는 댄스의 유행, 로큰롤 리듬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로큰롤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핍싱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한국적 록커의 원조가 된다. 이후 블루스, 소울, 사이키델릭 등 록 음악의 하위 장르들이 계속 유입되고 록 음악의 주요한 실천 방식인 밴드 형태가 1960년대 말부터 시도되면서, 한국 록이 태동하게 되었다. 1960년대 말∼1970년대에는 록을 연주하고 부르는 밴드 형태를 ‘보컬 그룹’ 혹은 ‘그룹 사운드’라 불렀다. 애드 훠, 키보이스 등 초기 록음악을 이끈 밴드는 기타를 전면에 내세우고, 노래와 연주를 결합하는 보컬그룹 혹은 그룹사운드라는 형태를 본격 도입하였다. 다양한 형태의 실천을 통해 번안과 모방에서 시작된 록 음악이 한국 록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서양 악곡에 유래를 둔 다른 팝 계열 음악과 마찬가지로 록 음악 역시 미8군 쇼를 통해 한국에 유입되었다. 미8군 쇼의 레퍼토리가 극장 쇼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도 일부 공개되면서,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 로큰롤과 트위스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유행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춤에서 시작된 록 음악의 수용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풍에 힘입은 로큰롤의 인기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1960년대 중반부터 스탠더드 팝과는 다른 감성을 가진 록 계열의 가요들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록 계열 가요는 라이브 살롱이나, 나이트 클럽 등 일반 무대로 확산되면서 영․미의 록 음악과는 다른 한국 록을 파생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록 음악의 주요한 음악적 실천 방식인 밴드 음악 역시 미8군 무대에서 외연을 넓히며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는 미8군 출신의 신중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밴드를 통해 록 음악을 연주하거나, 자신이 발굴한 여성 가수들을 통해 록 사운드를 대중적으로 전파하여 ‘한국 록의 비조’로 꼽힌다.
1970년대가 되면서 지배층들은 ‘퇴폐 풍조 일신’이라는 명목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과 탄압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대중음악에 대한 검열과 탄압의 절정은 1975년 시행된 ‘공연물 및 가요정화 대책’이었다. 기성세대로부터 ‘퇴폐’의 온상으로 지적당했던 록 음악은 이 정책으로 꽤 오랜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록 음악의 공백은 트로트와 결합한 트로트 고고와 산울림, 송골매와 같이 대학가요제를 통해 발굴된 캠퍼스 그룹사운드가 메워 나갔다.
1980년대 한국 록은 언더그라운드 포크와 결합한 포크록, 언더그라운드의 헤비메탈로 맥을 잇게 된다. 포크의 서정성과 록의 폭발성을 결합한 들국화의 데뷔 음반 (1985)은 한국 록의 정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전 세계적인 메탈 붐에 힘입어 부상한 헤비메탈 씬의 형성 역시 1980년대 한국 록의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며 록 음악의 중심은 홍대 앞을 중심으로 조성된 ‘인디음악’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인디음악’이란 제작과 배급 시스템 과정에서 거대자본이나 대형 유통구조로부터 자율적인 음악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음악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의 전환 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광범위한 문화적 실천까지 포함하고 있다. 초기 인디음악은 1990년대 전 세계를 휩쓴 포스트 펑크와 얼터너티브의 영향 하에 형성되어, 펑크 록(punk rock)과 얼터너티브 록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음악적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록 음악은 ‘진정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공동체의 이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진지한 음악’의 지위를 누려왔다. 록 음악을 특권화하는 이러한 비평적 흐름은 한국 록을 평가하는 데에도 무매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한국 록의 역사에서 록이 실질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거나, 주류의 판도를 바꾼 경험이 거의 없으면서도 늘 담론의 영역을 주도했던 것은 대중음악 안에서 록이 가지는 특별한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 주류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한국 록이 담당했던 몫은 있다고 할 수 있다. 록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돌출적, 불연속적 계기를 만들면서 주류 대중음악에 대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왔고, 결과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토양을 풍부하게 일구고 대중음악의 스타일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언더그라운드 클럽 등 다양한 음악적 공간을 발굴하고, 취향의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문화적 실천을 도출하고 매개하는 통로로 작용하고 잇ᇨ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