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1918년에 멕시코 프론테라에 설립된 한인 단체이다. 1917년 12월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北美總會)에 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여, 1918년에 정식으로 프론테라지방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회장은 김세원이 맡았고, 부회장에 이학서, 총무에 신오삼, 서기 및 학무에 김제선, 재무에 방한조, 구제에 김우용, 외교에 김경국 등이 선임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 독립의연금을 모금하는 한편, 왜화배척(倭貨排斥) 운동을 전개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멕시코 여러 곳의 교회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정의
1918년에 멕시코 프론테라에 설립된 한인 단체.
개설
연원 및 변천
1917년 3월에 한인들은 다시 프론테라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곳의 한인들은 여러 곳에서 들어왔지만, 곧바로 한인 마을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면서 채소를 팔아 생활은점차 안정되어 갔다. 1917년 3월 4일에는 제1회 통상회를 개최하여 의무금을 거두었고, 박선일을 외교원으로 뽑았으며, 프론테라 지역의 멕시코 지방 관리와 교섭하여 한인 자치권까지 얻었다. 6월 3일에 개최된 통상회에서는 회원들이 모이는 장소를 정하였고, 프론테라 동포 총회의 가옥 보상금으로 멕시코 돈 53원을 기부하기도 하였으며, 1917년 10월부터는 애국동맹금으로 매월 1원씩 저축하도록 정하기도 하였다.
그 뒤 12월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北美總會)에 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여, 1918년에 정식으로 프론테라지방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회장은 김세원이 맡았고, 그 외에 부회장에 이학서, 총무에 신오삼, 서기 및 학무에 김제선, 재무에 방한조, 구제에 김우용, 외교에 김경국, 대의원에 김태진, 사찰에 김문옥, 평의원에 김순일 · 김양수 · 신이서 등이 선임되었다. 3월 11일에는 회관 건립을 시작하여 29일에 완공하였으며, 31일에 낙성식을 성대히 치루었다. 회관은 비록 3∼4칸 크기의 초가집으로 총 공사비가 1백원에 불과하였지만,한인들이 직접 지은 매우 귀중한 건물이었다.
프론테라지방회는 1919년 3·1운동 때에 독립의연금을 모금하는 한편, 왜화배척(倭貨排斥) 운동을 전개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멕시코 여러 곳의 교회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멕시코 혁명으로 인해꾸준히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1921년에 대부분의 한인들은 쿠바로 이주하였는데, 이 때 3/4 정도의 회원 역시 쿠바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지방회의 모든 서류와 집기도 쿠바로 옮겨 갔다.
이후에도 프론테라에 남은 한인들은 여전히 ‘프론테라지방회’라는 이름을 유지하면서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공인덕이 회장을 맡아, 총무에 여춘근, 서기 및 학무원에 김태진, 재무에 임억복, 법무원에 유성여 등을 선임하였다. 하지만 1928년 경에나머지 한인들마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자, 9월에 열린 통상회에서 단체의 이름을 ‘알바로 오부리곤’으로 고쳤다.
참고문헌
- 『중남미 한인의 역사』(김도형, 국사편찬위원회, 2007)
- 『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Ⅲ―멕시코·쿠바편(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편, 국가보훈처, 2003)
-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이자경, 지식산업사, 1998)
-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Reedley California, 1959)
- 「멕시코지역 대한인국민회의 조직과 활동」(김도형,『국사관논총』107, 국사편찬위원회, 2005)
- 「멕시코 한인사회와 독립운동」(김도형,『아시아 아메리카 연구』5-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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