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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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용두산 부근에 있었던 조선후기 일본 사절에게 연회를 베풀던 건물. 연회장소.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3년
  • 이정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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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용두산 부근에 있었던 조선후기 일본 사절에게 연회를 베풀던 건물. 연회장소.

개설

초량왜관[草梁倭館, 현재 부산시 용두산 부근]의 부속 건물의 하나로, 연향대청(宴享大廳)이라고도 불렀다. 연대청에서 일본 사절을 응접했던 모습이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제10폭에 남아 있다.

역사적 변천

연대청은 초량왜관 밖 북쪽에 위치하였고, 35칸의 규모로 이루어졌다. 1칸 규격으로 만든 초량왜관의 북문(北門)인 연향문(宴享門)을 통해서만 출입 가능하였다. 평소에는 연향문을 봉쇄한 채 동복막장(東伏幕將)에게 지키도록 했으며, 그 열쇠는 조선 관원이 관리하였다. 1876년 한일수호조약(韓日修好條約)이 체결되면서 소실되었고, 그 터에 현재 남일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흔적은 일제강점기에 대청정(大廳町), 광복 후 현재까지 대청동(大廳洞)이란 지명(地名) 속에 남아 있다.

내용

일본사신단에게 연향을 설행하던 장면을 그린 「동래부사접왜사도」 제10폭에 연대청이 보인다. 그림 속 현판에 연대청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이를 통해 연대청의 형태 뿐 아니라 그곳에서 행해졌던 연회의 모습까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연대청 동쪽에는 조선 관리, 서쪽에는 일본 사신단이 위치하였다. 중앙에는 동래권번의 동기(童妓) 2명과 기생 2명이 각각 마주보며 춤추고 있으며, 세악수(細樂手)가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춤 반주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현재 연대청의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아 동래부 소속의 관기와 군영 악대가 연대청에서 공연했던 모습을「동래부사접왜사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 『변례집요(邊例集要)』

  •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 『신편 부산대관』(김승·양미숙 편역, 김한근 사진,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선인, 2010)

  • - 『조선시대 풍속화』(국립중앙박물관, 2002)

  • - 「조선후기 왜관의 성립과 왜관정책」(장순순, 『인문과학연구』31,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 - 「조선후기 동래부의 악공, 기생의 공연활동 연구」(오진호, 『한국음악문화연구』1, 한국음악문화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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