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악내취 ()

삼현육각
삼현육각
국악
제도
선전관청에 소속되어 피리2· 대금1· 해금1· 장구1· 북1의 다섯 종류 여섯 개의 악기로 편성된 삼현육각으로 행진과 연향에서 연주를 담당한 선전관청 소속 연주자.
이칭
이칭
내취세악(內吹細樂), 세악겸내취(細樂兼內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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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선전관청에 소속되어 피리2· 대금1· 해금1· 장구1· 북1의 다섯 종류 여섯 개의 악기로 편성된 삼현육각으로 행진과 연향에서 연주를 담당한 선전관청 소속 연주자.
개설

세악내취는 조선후기 선전관청에 소속되어 취타내취와 함께 연주활동을 한 내취의 하나이다. 세악내취는 어영청과 용호영 소속 세악수 가운데서 선발하였으며, 선전관청에 소속되어 왕의 행렬과 궁중의 연향에서 연주를 담당하였다. 세악수는 피리2·대금1·해금1·장구1·북1의 다섯 종류 여섯 개의 악기로 편성된 삼현육각 편성으로 여섯 명이 한 패를 이루어 연주했으나, 경우에 따라 세 패가 한 단위를 이루는 경우도 있었다.

내용

세악(細樂)은 본래 세악수가 연주하는 삼현육각 음악이란 뜻이다. 세악을 소악(小樂)이라고도 하는데, 행진악을 연주할 때는 대악(大樂)(취고수 혹은 취타내취)과 짝을 이루어 연주하기도 한다. 세악내취는 조선후기 내취의 한 종류로, 어영청과 용호영 소속 세악수 가운데서 선발되었으며, 세악수와 소속 기관만 다를 뿐 성격이 유사하다. 내취는 선전관청과 병조 일군색의 두 공공기관과 내취 도가라는 자치기구가 관리했는데, 세악내취도 이와 마찬가지다.

세악내취는 세악수와 마찬가지로 피리2·대금1·해금1·장구1·북1의 다섯 종류 여섯 개 악기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여섯 명이 한 패를 이루어 악을 연주했다. ‘삼현육각’이라는 용어는 ‘삼현’과 ‘육각’이 합성된 것으로, 삼현은 음악의 성격을 나타내고, 육각은 악기편성의 성격을 나타낸다. 삼현육각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형성되었으며, 삼현육각이라는 용어 외에 타풍류·대풍류 등의 용어도 사용되었다.

세악내취는 행진과 연향, 그리고 사악(賜樂) 등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행진에서는 장악원의 고취의 예에 따라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취타·길군악·길타령·별우조타령·군악 등 악곡을 중심으로 연주했고, 연향에서는 무환지악(武桓之樂: 군악)·소무지악(昭武之樂: 영산회상)·징각지악(徵角之樂: 여민락)을 연주했다. 사악에 내취를 내리는 것은 무과(武科)의 회방(回榜)·방방(放榜)·창방(唱榜)·사제(賜第) 등과 관련 있다.

변천과 현황

임진왜란 당시 척계광의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전술 교리를 도입함에 따라 조선의 병제는 속오법(束伍法)에 의해 중앙은 훈련도감을 비롯한 오군영 체제로, 지방은 속오군(束伍軍) 체제로 재편되었고, 이 제도와 더불어 군영에 세악수 제도가 성립됨에 따라 세악내취 제도도 성립되었다. 세악수는 1682년(숙종 8) 이전에 금군청(용호영)에 가장 먼저 설치되었고, 세악내취는 1778년(종조 2) 경에 성립되었는데, 어영청과 용호영 소속 세악수 가운데 일부를 선발하여 구성하였다.

세악내취의 삼현육각 편성은 조선전기 관아음악 문화를 토대로 하여 군영에서 발생하였고, 이 군영음악은 다시 관아음악으로 수용되었으며, 민간과 궁중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구군악대가 해체됨에 따라 세악내취는 장악원으로 이속되었는데, 1908년(융희2)에는 세악 내취(세악수) 24명이 장악과(掌樂課)로 편입되었고, 1911년 장악과가 아악대(雅樂隊)로 개칭되면서 세악내취 18명이 아악대로 이속되었으며, 1915년(대정 4) 12월 현재 장악원악원이력서(掌樂院樂員履歷書)에는 세 명의 세악내취가 남아있다.

세악내취의 삼현육각 음악은 궁중과 민간의 두 방면으로 전승되었다. 궁중에서 1902년까지도 정재반주는 등가에서 관현합주로 하였으나, 1923년 순종오순기념잔치에서는 삼현육각으로 반주하였다. 궁중으로 전승된 세악내취의 음악은 현재 국립국악원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행악은 취타·길군악·길타령·별우조타령·군악의 다섯 곡이고, 이외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곡은 상영산-중영산-세영산-가락덜이-삼현환입-염불환입-타령-군악의 여덟 곡으로 구성된 관악영산회상(管樂靈山會想|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이 있다. 민간으로 전승된 삼현육각 편성 악곡은 관악취타곡(행악)·관악영산회상·대풍류무용곡의 세 갈래가 있다. 관악취타곡은 취타-길군악-길타령-염불타령-삼현타령-별곡의 여섯 곡이 있고, 관악영산회상은 대영산-중영산-잣영산-삼현도도리-돌도도리-삼현타령-별곡타령의 일곱 곡이 전승되고 있다. 이 외 대풍류 무용곡은 민간에서만 전승되는 것인데, 반염불-굿거리-자진굿거리-느린허튼타령-중허튼타령-자진허튼타령-당악(휘모리)의 일곱 곡이다.

의의와 평가

세악내취는 취타내취와 달리 조선후기에 새로 성립된 악대제도로, 세악수와 함께 악기편성, 악곡 등이 현재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악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취타내취와 함께 새로운 군영음악문화를 창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세악내취(세악수)에 의해 삼현육각이라는 독특한 악기편성이 등장하였으며, 세악(細樂)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발생시켰다.

셋째, 취타악과 함께 새로운 행악 연주형태가 발생함으로써 삼현육각으로 행악을 연주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날 수 있었다.

넷째, 세악(細樂)은 새로운 연향악 연주형태를 창출하였다.

다섯째, 세악(細樂)은 20세기 이후 그 연주전통은 단절되었지만, 삼현육각음악으로 그 연주전통이 이어졌고, 민간의 무속음악 연주, 탈춤반주와 궁중의 정재반주 등에 활용하는 등 그 영향력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조선후기 음악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군영악대 취고수·세악수·내취』(이숙희, 태학사, 2007)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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