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흑인음악은 미국 흑인 대중음악의 장르와 스타일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거나, 혹은 이를 자생적 방식으로 재해석한 대중음악이다. 흑인음악은 영미권 대중음악의 근간으로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음악적 스타일이자 장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 펄 시스터스, 김추자 등 소위 ‘신중현 사단’을 중심으로 소울 가요가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했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듀스 등의 랩댄스 스타일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알앤비와 힙팝이 한국 주류 대중음악 시장을 주도했다.
흑인음악은 역사적으로 영미권 대중음악의 근간이었으며, 한국에서도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스타일이자 장르라 할 수 있다. 특히 소울과 힙합/알앤비(R&B)는 한국식 흑인음악의 두 가지 중요한 축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힙합은 음악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 한국 청(소)년 문화의 핵심 요소로 정착했다.
한국 최초의 흑인음악은 ‘일제강점기’에 미국 주류 대중음악으로 유입되었던 재즈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중가요에 접목되어 인기를 끌었던 흑인음악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소울(Soul)이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울풍의 가요, 그리고 밴드 음악으로 즐겨 연주되었던 소울 사이키가 그 대표적인 음악 스타일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소울의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흑인음악은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어느 정도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나마 1970년대 후반에 잠시 인기를 끌었던 디스코와 펑크(Funk) 풍의 주류 가요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에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주목을 받았던 재즈 퓨전과 블루스가 흑인음악의 명맥을 유지해 주었다.
그리고 미국 대중음악 시장을 휩쓸던 힙합이 1990년대 이후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흑인음악은 다시금 국내 대중음악의 중심축이 된다. 1990년대 초중반 랩댄스(Rap Dance) 스타일의 음악이 청소년들 사이에 절대적인 인기를 끌면서 힙합이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언더그라운드에서 본격적인 한국 힙합이 싹트게 되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당대 미국 흑인음악을 힙합과 양분하고 있는 알앤비가 한국 주류 대중음악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힙합 역시 언더그라운드를 넘어서는 인기를 끌고 있다. 더욱이 힙합과 알앤비가 점차 하나의 음악 스타일로 재조합됨에 따라, 흑인음악은 현재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르로 자리매김 중이다.
해방 이전에 가극단이나 악극단 중심으로 재즈가 연주되었으며 김해송 등 빼어난 음악가들은 재즈 풍의 대중음악을 일찌감치 작곡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미군 부대 중심으로 재즈의 음악적 영향이 지속되는 가운데,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 사이 펄 시스터스, 김추자, 이정화 등 소위 ‘신중현 사단’을 중심으로 소울 가요들이 국내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했다. 「님아」, 「커피 한잔」(이상 펄 시스터스), 「님은 먼 곳에」, 「늦기 전에」(이상 김추자) 등이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블스나 라스트 찬스 같은 밴드들은 소울과 록을 결합한 ‘소울 사이키’ 음악을 연주하여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대마초 파동과 주류 사회의 탄압 속에 1970년대 중반 이후 소울 가요는 대중음악계에서 사라지게 된다.
흑인음악은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졌지만,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 여성 스타 가수들을 중심으로 흑인음악 풍의 노래들이 잠시나마 주류 가요시장을 장악하였다. 가령 이은하의 「밤차」와 「아리송해」, 혜은이의 「새벽비」처럼 디스코와 펑크를 대중가요에 접목한 가요가 현란한 율동과 함께 인기몰이를 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블루스와 재즈 퓨전 같은 흑인음악들이 나름의 인지도를 획득하는데,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같은 음악가들이 그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렇게 소울의 퇴장이후에도 흑인음악은 국내에서 간간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금 흑인음악이 국내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건 1990년대 이후 힙합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부터이다. 미국 힙합 음악의 랩과 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위 랩댄스로 무장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 등이 1990년대 초․중반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난 알아요」, 「하여가」, 「컴백홈」(이상 서태지와 아이들), 「그대 지금 다시」, 「굴레를 벗어나」(이상 듀스), 「흐린 기억 속의 그대」(현진영) 등의 흥겨운 노래와 더불어 이들 음악가의 춤과 패션은 힙합 음악과 문화를 청소년들에게 전파하고 확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랩댄스 음악의 인기는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서 주춤거리게 되지만, 같은 시기에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한국 힙합’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 피시통신의 온라인 힙합/흑인음악 동호회들은 가리온, 주석, 버벌진트, 데프콘 등 2000년대 이후 한국 힙합 음악을 주도하는 음악가들을 배출했고 마스터플랜, 소울컴퍼니 같은 중요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들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들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힙합은 사운드, 가사와 라임 등 모든 면에서 음악적 발전을 진행해왔다. 또한 상업적으로도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음반들이 제작되면서 힙합, 나아가 흑인음악 전반에 걸쳐 수용자 층의 지속적인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흑인음악은 현재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상업적 자양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 흑인음악을 대표하는 하위 장르인 힙합은 언더그라운드 출신으로 주류 스타가 된 에픽 하이, 리쌍, 다이나믹 듀오, 드렁큰 타이거 등의 왕성한 활동에 힘입어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으로 2000년대 이후 또 다른 흑인음악 하위 장르인 알앤비가 힙합 못지않은 주목을 받으며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알앤비는 발라드부터 댄스음악까지 폭넓은 음악에 접목될 있는 음악적 특성 때문에, 기성가수부터 아이돌까지 다양한 음악가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힙합과 알앤비가 재조합되고 융합된 ‘하이브리드(hybrid)’ 흑인음악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 가령 와이지(YG) 엔터테인먼트나 제이와이피(JYP) 엔터테인먼트 같은 국내 굴지의 대형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음악가들이나 아이돌 가수들, 즉 빅뱅, 투애니원, 투피엠 등의 음악은 이러한 알앤비/힙합 하이브리드 사운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흑인음악은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현재 국내 주류 대중음악 시장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팝음악 혹은 대중음악은 영미권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음악이다. 그리고 영미권 대중음악은 애초부터 가스펠, 블루스, 재즈 등 흑인음악에서 비롯한 것이며 지금은 힙합/알앤비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흑인음악은 힙합/알앤비를 중심으로 대중음악 시장에서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흑인음악의 세계적 트렌드와 국내 적용과정에 대한 이해는 한국 대중음악의 음악적, 산업적 지표를 설정하기 위한 하나의 기반이 될 것이다.
지금의 세계적인 케이팝/한류 열풍 또한 이러한 흑인음악과 연계해 설명되어야 한다. 실제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악가들뿐 아니라, 아이돌을 비롯한 국내 주류 대중음악가의 음악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힙합/알앤비의 기법에 바탕하고 있다. 따라서 흑인음악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확보한다면 케이팝을 음악적으로 이해하고 장기적 마케팅 전략을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음악이 그러하듯이 흑인음악 역시 단순히 그 음악적 내용만으로 그 의미를 모두 평가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흑인음악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흑인의 전반적인 문화와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특히 최근의 힙합은 음악을 넘어서 청(소)년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글로벌 문화표현물이자 문화상품으로 발전해왔다.
즉, 비보이 댄스, 그래피티, 패션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적 문화표현물로서 힙합은 우리 청(소)년들의 일상생활문화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흑인음악은, 일견 언어적, 인종적 모순이지만, 한국의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단초 혹은 키워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