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은 당나라의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문으로 번역하고 종밀(宗密)이 이를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울산 양덕사 소장본은 1380년(우왕 6)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현전하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중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권상(卷上)의 끝부분에 이색의 발문(跋文)과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어 간행된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2015년 4월 22일에 보물 제1518-2호로 지정되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은 당나라의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문으로 번역하고 종밀(宗密)(宗密)이 이를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2015년 4월 22일 보물 제1518-2호로 지정되었다.
울산 양덕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1380년(우왕 6)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양덕사 소장본은 현전하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권상(卷上)의 끝부분에 이색의 발문(跋文)과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단에는 경서비구(經書比丘)로 종불(宗昢), 운수(云首) 등이 필사(筆寫)에 참여하고, 지도(志道), 선철(禪哲), 지상(志祥), 승해(勝海) 등이 각수(刻手)로 참여한 사실이 적혀 있다. 또한 권하(卷下)의 끝부분에는 "경신사월 개판(庚申四月開版)"이라는 간행 기록이 적혀 있어서 1380년(우왕 6)에 이 경전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2권 1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24.7㎝, 가로 16.0㎝이다. 표지는 보라색 무늬가 있는 천에 한지를 배접(褙接)하여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장정을 한 선장본(線裝本)이다. 표지는 후대에 개장(改裝)되었다. 제첨은 ‘원각경(圓覺經)’으로 되어 있다. 닥종이를 사용하였다.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의 형태이며, 반곽(半廓)의 크기는 세로 18.3㎝, 가로 13.8㎝이다. 계선(界線)은 긋지 않았고, 한 면에 8항 20자 주쌍항으로 새겼다. 판심 위아래에 세 개의 흑구(黑口)가 있고 그 가운데 ‘원각(圓覺)’, ‘경(經)’이란 두 개의 판심제(版心題)가 보인다. 어미는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를 사용하였다. 권의 첫머리에는 사제(思齊), 배휴(裵休), 영기(英奇)가 쓴 3개의 서문이 있고, 권상(卷上)의 끝부분에는 1380년(우왕 6) 이색이 쓴 발문과 시주질, 유사질이 있다.
이 책은 판종(版種)이 매우 다양하여 간행 시기를 알 수 있는 판본만 해도 현재 24종에 이른다. 그중 양덕사본은 보물 제1518호로 지정된 김민영 소장본과 동일한 책으로 확인되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줄여서 『대방광원각경(大方廣圓覺經)』, 『원각수다라요의경(圓覺修多羅了義經)』, 『원각요의경(圓覺了義經)』, 『원각경(圓覺經)』 등으로 부른다. 이 책은 부처와 열두 보살이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 상으로는 시방(十方)에 두루 가득차 생멸(生滅)함이 없는 원각묘심(圓覺妙心)과 이 원각묘심을 깨닫기 위한 수행 방법을 12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고려 때 지눌(知訥)이 이 경전을 깊이 신봉하여 당시 『요의경(了義經)』이란 이름으로 널리 유통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함허 화상(涵虛和尙)이 『원각경소(圓覺經疏)』 3권을 저술하고, 유일(有一)과 의첨(義瞻)이 각각 『사기(私記)』를 저술하였다. 이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우리나라 승려의 정식 교과 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널리 독송(讀誦)되어 많은 주석서가 나왔다. 이 경전은 문체가 유려(流麗)하고 사상이 심원(深遠)하여 문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뛰어난 작품이라 불교를 수행할 때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양덕사 소장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에는 구결이 표시되어 있어 15세기 국어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또한 조선 전기의 불교 판본을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