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는 일명 금고(金鼓) 또는 금구(金口)라고도 하며, 형태는 징 모양과 유사한데 주로 청동으로 제작하여 사찰의 법당 안 또는 밖에 걸어둔 후 사찰에서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의식 법회 때 앞면을 쳐서 소리가 나도록 고안되어 있다.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반자는 앞면 지름이 32.9㎝인 소형이며, 옆면 위쪽에는 2개의 고리와 함께 음각된 명문이 있고, 뒤쪽은 옆면에서 연장된 폭이 작은 면과 함께 넓은 공명구(共鳴口)가 뚫려 있는 반자형(盤子形) 금고이다.
반자의 앞면에는 세 줄의 융기동심원(隆起同心圓)으로 당좌구(撞座口)와 중구(中口 )및 외구(外口)가 구획되어 있다. 당좌구에는 연밥이 1+5+9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중구에는 15개의 중판 연꽃무늬가 부조되어 있으며, 외구에는 단순하게 처리된 세 개의 구름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2개의 고리가 있는 옆면에도 3줄의 융기동심원을 돌려 면을 양분한 후 뒤쪽 면에 1행으로 된 30자의 긴 명문을 새겨 놓고 있다. 명문은 왼쪽 고리에서 2.6㎝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대안원년을축칠월일 황리현호장인용부위민 동량등동심주성반자일구(大安元年乙丑七月日 黃利縣戶長仁勇副尉閔 棟梁等同心鑄成半子一口)'라는 1∼2㎝ 크기의 글자로 음각되어 있다. 또한 두 개의 고리 사이에는 거푸집을 고정하는 주조과정에서 생긴 2개의 혹이 튀어나와 있기도 하다. 앞면보다 지름이 약 3㎝ 정도 더 큰 뒷면은 옆면에서 폭 8.1㎝의 크기로 비스듬히 올라가다 끝이 융기된 채 둥글게 마감되어 있다.
대안원년명반자는 명문에 의해 1085년(선종 2)에 주조되었으며, 경기도 여주의 고려 초기 때의 지명인 황리현(黃利縣)에서 호장(戶長)이자 고려시대 향직(鄕職)의 무산계급 중 종9품에 해당하는 인용부위(仁勇副尉)였던 민(閔) 등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반자는 865년의 함통6년명반자와 1073년(문종 27)의 함옹9년반자, 1084년(선종 1)의 대강10년명반자 등 지금까지 밝혀진 명문이 있는 반자로서는 4번째로 오래된 조성연대를 지녔다. 특히 함통6년명반자와는 크기 및 고리 모양이 서로 닮아있고, 함옹9년명반자와 비교하면 뒷면의 짧은 폭과 공명구 모양이 서로 유사하다. 또한 양산(梁山) 내원사(內院寺)에 소장되어 있는 201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1091년(선종 8)의 내원사청동북처럼 당좌구와 중구, 외구로 구분된 곳에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새기고 있어 고려 11세기에 조성된 반자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2010년 9월 20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보물 황리현명 청동북으로 승격 지정된 유물로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안원년명반자는 측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명문에 의해 11세기말인 1085년(선종 2)에 주성된 지금까지 밝혀진 명문이 있는 청동반자로서는 4번째로 오래된 조성연대를 지닌 국가유산의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