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사는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3에 “화정사(和鼎寺)는 구봉산(九峯山)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전기부터 존재했던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더구나 사지 내에서 고려시대 범종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이미 사찰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이 보살상은 아미타여래삼존좌상 가운데 좌협시 관음보살상으로 조성되었다고 하며, 본존과 우협시 대세지보살상은 청양읍내의 봉안사에 모셔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목조보살좌상은 부정팔각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머리에는 큼직한 보관을 착용하였다. 비교적 큰 크기에 당당한 자세와 안정된 신체 비례를 보인다. 보살상의 보관은 테두리를 연꽃 모양으로 능을 준 기본 형태에 별도로 제작한 꽃무늬와 구름무늬, 그리고 불꽃무늬 등을 부착하여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특히 보관의 하단 테두리 중앙에는 짙은 남색의 보석을 감입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다. 보관의 양옆으로는 관대(冠帶)가 마치 바람에 나부끼듯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각진 보계는 뒤를 향해 둥글게 말렸으며, 보관 아래쪽 턱을 이루며 노출된 부분의 머리카락만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귓불을 가로질러 어깨 위에서 둥근 고리 모양으로 엮고, 다시 두 가닥으로 갈라져 가슴과 등 쪽으로 길게 드리웠다. 귓바퀴의 안쪽을 짧고 날카로운 음각선으로 상각(上脚)과 하각(下脚)을 구분하였고, 그 아래로 폭이 좁고 긴 귓구멍을 표현하였다. 넓적한 얼굴은 턱이 짧고 살집이 많으며, 앙다문 얇은 입술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 보살상은 각진 삼각형 콧날과 가늘게 치켜뜬 눈매, 앙다문 입술에서 강인한 정신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보은 법주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보물, 2003년 지정), 순천 송광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보물, 2010년 지정) 등 조각승 혜희가 참여한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구부렸다. 손은 따로 제작하여 꽂았으며, 손가락은 섬려하며 팔목에는 띠 모양의 팔찌를 착용하였다. 양쪽 어깨에는 숄처럼 덮어 내린 천의(天衣)를 걸쳤는데, 팔뚝을 돌아 굽이치며 역동적으로 흘러내렸다. 가슴에는 치마(裙衣)의 끝단을 3개의 꽃잎 모양으로 접어 멋을 내었고, 군의 위에 입은 요의(要衣) 자락도 나비매듭으로 맵시 있게 묶었다. 무릎 부분에는 이중의 짧은 수술대와 여의두문, 불꽃무늬로 이루어진 화려한 갑대(甲帶) 장식을 표현하였고, 결가부좌한 무릎 아래로는 물결 모양으로 겹쳐진 넓은 띠를 주름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이 보살상은 앞선 시기에 조성된 공주 갑사 석가모니불 좌상이나 금산 보석사 대웅전 석가여래삼존좌상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신체에 비해 얼굴이 커졌고 장식성과 함께 강인한 정신성, 그리고 역동적인 힘을 드러낸 법주사 원통보전 관음보살상이나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등 지금까지 밝혀진 조각승 혜희의 작품과 비교된다.
이 보살상은 상호에서 오는 강인함과 관대 · 천의 등에 표현된 강한 역동성, 깊고 날카로운 입체적으로 조각된 주름선, 장식성이 강조된 착의법 등 조각승 혜희 유파와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및 유파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