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원각사 목조 보살 좌상 ( )

구미 원각사 목조보살좌상
구미 원각사 목조보살좌상
조각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각사에 있는 조선후기 희장 등 9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목조 불상. 시도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각사에 있는 조선후기 희장 등 9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목조 불상.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및 특징

원각사는 구미시 선산읍에 위치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旨寺)의 말사로서, 1931년 2월에 직지사의 포교당으로 창건되었다. 이 보살상은 원각사 원통전의 본존으로 봉안되었으나, 1968년 불상에서 발견된「수다사 불상조성연기(水多寺佛像造成緣起)」에 근거해 보면, 원래는 구미 수다사 아미타여래삼존상 중 우협시 대세지보살상으로 조성된 것이다. 좌협시 관음보살상은 대구 서봉암에 이안되었다고 전하나, 현재 소재불명이다.

불상은 1649년(인조 27) 희장(熙藏)을 비롯한 천색(天賾), 경옥(敬玉), 태림(太林), 경호(敬湖), 신원(信元), 보해(寶海), 관원(寬元), 경선(敬先) 등 9명의 조각승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수조각승 희장은 1639년(인조 17)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제작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한 후, 진안 금당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50년),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61년) 등의 불상 제작에 수조각승으로 참여하였다.

보살상의 크기는 높이 111㎝, 머리 높이 19.2㎝, 어깨 너비 49㎝, 무릎 너비 78㎝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양손으로 연꽃 줄기를 잡고 결가부좌하였다. 머리 중앙에는 보계(寶髻)를 둥글게 틀어 올렸으며, 귀의 앞뒤에서 흘러내린 보발(寶髮)은 어깨 위에서 둥근 고리 모양을 이루며 다시 세 가닥으로 흘러내렸다. 보관은 연화 당초문을 새긴 능화형(稜花形) 모판(母板)에 불꽃무늬, 구름무늬 등의 입체적인 조각을 따로 제작하여 꽂아 장엄한 조선 후기 일반적인 보관 형태를 보여준다.

둥글 넓적한 얼굴은 살집이 풍부하며, 양미간의 폭이 넓고 눈은 반개하여 사바세계를 굽어살피듯 시선을 처리하였다. 편평하게 손질한 콧등은 각이졌으나, 코끝을 둥글려 부드러운 인상을 자아내고 얇게 다문 입술에는 입가를 눌러 자비의 미소를 만들었다. 큼직한 귀에는 자그마한 꽃무늬의 귀걸이를 부착하였고, 귓구멍은 물방울 모양으로 작게 늘어져 있으며 귓바퀴의 윤곽은 굵고 그 안에 짧고 부드러운 상각(上脚)과 하각(下脚)의 골을 만들었다.

착의는 불상과 같이 이중 착의법으로, 상의(上衣) 위에 변형의 편단우견으로 걸쳐 대의 자락이 오른쪽 어깨 위에 살짝 걸쳐져 있는 모습이다. 옷 주름은 생략했으며, 표현된 주름은 대부분 간결하고 힘 있는 철선묘를 사용하였다. 넓게 노출된 가슴에는 세 줄로 늘어진 화려한 영락을 착용였다. 군의의 끝단은 사선으로 팽팽히 접었고, 복부에는 대의가 W자형으로 교차된 모습이 확인된다.

보살상의 좌법은 오른발을 노출시킨 길상좌로, 무릎은 폭이 넓고 불신(佛身)의 구성에서 비교적 높게 처리되었다. 무릎에 표현된 주름 역시 불신과 마찬가지로 간결한 철선묘로 표현하였는데, 왼팔을 덮고 내린 소맷자락이 오른쪽 발가락을 덮고 날렵한 나뭇잎 모양으로 드리웠으며, 발목 아래로 넓게 형성된 ‘八’자형 띠주름을 중심으로 좌우로 1~2가닥의 주름이 형식적으로 펼쳐져 있다. 이후 희장의 작품에서 이러한 八자형 띠 주름이 지나치게 넓게 자리 잡아 강조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두 손은 별도로 제작하여 꽂은 것인데,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각기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고 연꽃 줄기를 잡았다.

이 보살상은 양감이 풍부한 얼굴, 편평하게 손질한 콧등, 둔중한 느낌을 자아낼 정도의 두터운 인체 표현 등을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특징은 희장이 조성한 불상에서 고루 찾아볼 수 있다. 희장은 17세기 중반에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으로, 1639년(인조 17) 수조각승 청헌(淸憲)이 조성한 쌍계사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조성할 때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가하였다. 이로 인해 이 불상은 현재 확인된 불상 중에서는 희장이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불상은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밝혀진 17세기 중엽의 기준 작품이며, 17세기 중반 이후의 영남과 호남지역에서 독자적인 조각 영역을 구축한 희장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상 유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경상북도 도보」제5565호(2011)
『선산지역고적조사보고서』(정영호, 단국대학교출판부, 1968)
「고흥 능가사 대웅전의 목조삼방불좌상」(송은석,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2, 사회평론, 2006)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손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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