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관음사는 1912년에 동본원사(東本願寺)라는 일본 사찰로 창건되었으며, 1960년대 초까지 원불교 교당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김제 금산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불상은 관음사의 창건 당시부터 봉안해 왔던 것이라고 전한다.
1605년(선조 38)에 쓴 조성 발원문에는 불상을 조성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에 따르면, 산인(山人) 의암(儀庵)이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 북암(北庵)이 소실되어 밭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1601년(선조 34)에 법당을 새로 짓기 시작하였고 1602년(선조 35)에는 법당에 모실 삼존상을, 1603년(선조 36)에는 영산회상도와 별전의 단청 불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어 1605년(선조 38) 8월에는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과 약사여래도, 아미타여래도, 지장보살도, 시왕도 등을 조성하여 11월에 모두 마쳤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볼 때, 이 보살상은 1605년(선조 38)에 조성된 네 구의 보살상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존상(尊像)의 구성 형식은 하동 쌍계사 대웅전이나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같이 삼불사보살(三佛四菩薩) 형식이었을 것이다. 특히 보살상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왼손을 내려 지물을 잡고 있는 수인의 형태로 보아, 우협시 보살상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네 구의 보살 중 통상적으로 우협시로 등장할 수 있는 보살은 보현과 지장보살인데, 이 보살상의 도상적 특징상 보현보살상일 것이다.
불상의 제작에는 원오(元悟), 충신(忠信), 청허(淸虛), 신현(信賢), 신검(神劒) 등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였다. 이 보살상을 원래 봉안했던 북암의 위치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여러 지역에 그 이름이 남아 있어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제작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보살입상은 총 높이 152.5㎝, 어깨 폭 33.7㎝로 거의 등신대에 가깝다. 보살상은 불상처럼 이중으로 천의를 걸쳤고,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썼다. 들어 올린 오른손으로 연꽃 줄기를 잡았고, 내린 왼손으로 정병을 쥐었으나 후보된 것이다. 보관은 화염무늬, 구름무늬 등을 따로 제작하여 꽃잎 모양으로 능을 준 모판(母板)에 부착하여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머리 중앙에는 두 가닥으로 땋아 올린 보계(寶髻)가 솟았으며, 보관의 턱이 되는 보발은 세밀하게 빗질하였고, 양쪽 어깨에는 귀의 뒤쪽과 귓불을 가로질러 내린 두 가닥의 머리카락을 엮어 어깨 위에서 나비 리본 모양의 고리를 이룬 뒤 다시 두 갈래로 흘러내렸다. 보발은 흙 같은 가소성의 재질을 사용해서 부착하였다. 부푼 눈두덩 사이로 가늘게 반개한 눈은 선정에 잠긴 듯 고요하며,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여 중생을 굽어살피듯 처리한 시선은 사바세계를 향해 있다. 얼굴은 날렵한 턱과 정돈된 양감으로 인하여 온화하고 실재감이 있다. 이는 17세기 중 · 후반의 다소 살집이 강조되어 중후한 불상들과 비교되는 요소이다.
얼굴에 비해 어깨는 좁은 편이며, 허리를 약간 앞으로 제쳐 유연한 신체의 굴곡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천의는 불의와 마찬가지로 이중으로 걸쳐 입었으며, 왼쪽 팔꿈치에는 마치 작자의 표식인듯 ‘ㅅ’ 주름을 주어 강조하였고 손목을 덮어 내린 천의의 소맷 자락은 새의 날개처럼 좌우로 모양을 내어 특징을 주었다. 천의와 군의에 표현된 주름은 간결하고 철선묘(鐵線描)를 사용하여 힘 있는 선묘를 보여주며, 복부 아래로 펼쳐진 천의와 군의 자락에는 칼로 찍어 그은 듯한 두 가닥의 날렵한 음각선을 사용하여 인상적인 변화를 주었다. U자형으로 넓게 노출된 가슴에는 X자형으로 걸친 영락 장식과 수평으로 입은 군의 자락이 표현되었다.
이 불상을 제작한 원오, 충신, 청허, 신현, 신일은 같은 해에 김해 선지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함께 제작하였는데, 이때의 수조각승도 원오였다. 원오는 1599년(선조 32)에 상원사 문수동자상의 개금에도 참여했던 조각승으로서, 주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조각승이다.
보살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황폐해진 사찰을 재건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상세히 전하고 있어서 임진왜란 이후 활발하게 이루어진 불교 재건사업과 관련된 자료를 제공한다.
원오는 16세기와 17세기에 불교 조각계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인물이고, 청허는 원오의 작품 경향을 계승하여 17세기 중반까지 활발하게 활동한 조각승이어서 원오유파(元悟流派)의 조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불상이다. 특히 불상의 양식상 부드럽고 사실적인 모델링을 바탕으로 한 안정된 조형감은 16세기 후반의 조각 경향을 계승한 17세기 초반의 작품이며, 17세기 조각사의 첫 장을 여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