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9년(인조 27)에 조각승 사인과 상림에 의해 제작되어 전북특별자치도 순창 만일사에 봉안되었던 석가 불상으로, 2009년 2월 9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포천 동화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1972년 개금 불사를 할 때 발견된 복장 발원문(현재는 임사본만 남아 있고, 원본은 도난당함)에 의해, 1649년(인조 27) 7월 16일 수조각승 사인(思忍)과 차조각승 상림(尙琳)이 가섭, 아난, 16나한, 제석, 장군, 사자 등을 조성한 후 전북 순창 회문산 만일사(萬日寺)에 봉안되었던 불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나머지 불상들의 소재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본존 석가불만 동화사에 이안되었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과거불인 제화갈라와 미래불인 미륵이 함께 봉안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조선 후기 나한전의 존상 배치에서 매우 이례적인 구성이다.
수조각승 사인은 1612년(광해군 4) 수조각승 태전(太顚)을 비롯한 10명의 조각승이 조성한 해남 대둔사 대웅전의 삼방불좌상 조성발원문에 9위 조각승으로 등장한 이래 현진(1614년), 수연(1639년), 무염(1656년) 등의 수조각승과 함께 불상을 조성하였다. 여러 수조각승과 함께 불사를 행하였기 때문에 어느 유파에 속하였는지 확단하기는 어려우나, 1649년(인조 27) 수조각승으로서 조성한 본 불상을 통해 보면, 수연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불상은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석가불상과 같이 손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다. 옷은 군의, 승기지, 그리고 변형 편단우견의 대의만 입었고, 조선 후기 일반적인 석가불상처럼 부견의는 입지 않은 모습이다. 머리는 약간 숙여 예배자와 얼굴을 대할 수 있도록 한, 조선 후기에 제작된 일반적인 불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불상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매우 두껍게 처리된 대의의 표현이다. 딱딱한 갑옷 속에 불신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른쪽 가슴 앞에 층을 이루며 흘러내린 대의 자락, 왼쪽 어깨 측면의 옷 주름, 하반신 중앙에 부드럽게 휘어진 옷 주름과 왼쪽 무릎에 입체적으로 조각된 의단 처리 등은 수연과 그 제자들인 영철, 운혜 등의 작품에서 보이는 표현과 거의 동일하다. 1649년(인조 27) 영철이 조성한 서울 화계사 목조지장보살좌상, 1650년(효종 1) 운혜가 조성한 해남 서동사 목조삼방불좌상 등에서 볼 수 있는 신체와 옷 주름 표현은 동화사 석가상과 동일 유파에 속한 조각승의 작품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