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목조 감실은 사찰 창건 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공예품으로, 2009년 5월 21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에 있는 용주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목조 감실은 원래 축성전(祝聖殿)에 봉안되었다고 하는데, 1911년에 촬영된 대웅보전 내부 사진을 보면, 목조 삼세불 좌상 옆에 놓여 있었다. 감실 내에 작은 감실이 상하로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조 감실은 일부 부재가 없는 상태로 효행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목조 감실은 두 점이 남아있는데, 상륜부가 남아있는 감실의 전체 높이가 217㎝이다. 1점은 상륜부가 세 단으로 이루어진 연판 위에 호리병 모양의 상륜(相輪)이 남아있고, 나머지 목조 감실은 상륜부가 남아있지 않다. 지붕은 급한 경사로 내려오다가 처마 끝에서 반전한다. 처마 끝 공포(栱包)는 건축물과 같이 세밀하고 견고하며 모서리에 여섯 개의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감실의 중간에 기둥의 중간을 구획하듯이 난간을 둘러 두 단으로 나누어 2층의 누각처럼 보인다. 20세기 전반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내부에 상하로 작은 감실에 놓여 있어 원래 상태를 알 수 있다. 바닥 면은 여러 조각을 서로 끼워 맞추었고, 바닥과 기둥을 서로 연결하는 금속 장식이 달려 있다.
목조 감실의 상륜부와 6각 형태는 서울 창덕궁 향원정(香遠亭)과 존덕정(尊德亭) 및 낙선재(樂善齋) 상량정(上凉亭) 등에 남아있어 왕궁 내의 전각을 축소하여 감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1607년(선조 40)에 중국 명나라 왕기(王圻)가 편찬한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권3 정(亭)에 그려진 그림과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1790년(정조 14)에 간행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내에 그려진 가옥의 형태와 기둥 숫자가 같다.
이 목조 감실은 원래 축성전(祝聖殿)에 있었다가 지장전과 대웅보전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축성전은 군왕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동일한 형태와 크기의 감실이 2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용주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던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의 위패 등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용주사 목조 감실은 국내 유일한 형태의 작품이다. 감실의 제작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축성전에 봉안된 것으로 보아 왕실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목조 감실은 용주사가 창건된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와 제작 상태 등이 조선 후기 왕실 공예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