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화성시 소재 용주사(龍珠寺)에 보관된 목조 감실.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감실의 중간에 기둥의 중간을 구획하듯이 난간을 둘러 두 단으로 나누어 2층의 누각처럼 보인다. 20세기 전반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내부에 상하로 작은 감실에 놓여 있어 원래 상태를 알 수 있다. 바닥 면은 여러 조각을 서로 끼워 맞추었고, 바닥과 기둥을 서로 연결하는 금속 장식이 달려 있다.
목조 감실의 상륜부와 6각 형태는 서울 창덕궁 향원정(香遠亭)과 존덕정(尊德亭) 및 낙선재(樂善齋) 상량정(上凉亭) 등에 남아있어 왕궁 내의 전각을 축소하여 감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1607년(선조 40)에 중국 명나라 왕기(王圻)가 편찬한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권3 정(亭)에 그려진 그림과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1790년(정조 14)에 간행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내에 그려진 가옥의 형태와 기둥 숫자가 같다.
이 목조 감실은 원래 축성전(祝聖殿)에 있었다가 지장전과 대웅보전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축성전은 군왕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동일한 형태와 크기의 감실이 2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용주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던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의 위패 등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사도세자』(수원화성박물관·용주사효행박물관, 2012)
- 『한국의 사찰문화재』인천광역시·경기도(문화재청·(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2)
- 국가유산청(www.khs.go.kr)
- 『Im Lander Der Morgenstille』(Nobert Weber,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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