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사 대웅보전 내 수미단(須彌壇) 위에 화려하게 투각된 목조광배(木造光背)를 갖춘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된 목조삼존불좌상이다. 2011년 3월 8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흥국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목조 석가여래 좌상은 높이가 77.3㎝로 머리와 신체가 인체비례에 가까운 균형 잡힌 모습이다. 불상은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고,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 계주(中央髻珠)와 정수리 부위에 낮은 원통형의 정상 계주((頂上髻珠)를 장식하였다. 타원형의 얼굴에는 가늘게 뜬 눈, 원통형의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에서 풍기는 인상이 조각승 상정(尙淨)이 제작한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檜巖寺) 목조여래좌상 등과 거의 유사하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수평으로 표현되어 17세기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은 사라졌다. 불상의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에 수직으로 한 가닥의 대의 자락이 가슴까지 늘어져 한쪽 면만 둥글게 처리하고, 나머지 대의 자락은 오른쪽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후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반대쪽 대의 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복부(腹部)에서 반대쪽 대의 자락과 자연스럽게 접혀있다.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은 오른쪽 발목에서 밑으로 간략하게 펼쳐져 있다. 왼쪽 무릎 위에 늘어진 소맷자락은 17세기 후반에 호남에서 활동하였던 색난(色難)이 제작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판형이 단순화된 형태로 늘어져 있다. 불상의 측면은 어깨선을 따라 옷 주름이 두 가닥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앞자락은 손을 따라 완만하게 늘어지고, 뒷자락은 수직으로 길게 늘어졌다. 이 사이로 앞자락의 중간 부분에서 사선을 그리며 뒷자락으로 옷 주름이 접혀 인(人) 자형을 이룬다. 불상 뒷면은 목둘레에 대의 끝단을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옷자락이 대좌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僧脚崎)는 수평으로 묶어 연판형 주름이 상단에 접혀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편 상태로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을 무릎 위에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닿은 형태로, 조선 후기 석가불이 취한 자세를 하고 있다.
석가불 좌우에 놓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염문(火焰文)과 화문(花文) 사이에 용문(龍文)이 장식된 화려하고 커다란 보관을 쓰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다. 보살상의 인상과 신체 비례는 본존과 거의 유사하지만,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쳐 치켜든 손목 밑으로 편삼자락이 늘어져 있는 것과 지물을 들고 있는 손의 위치가 다르다.
삼존불의 뒤에는 각각 보주형(寶珠形) 거신광배가 투각으로 세워져 있다. 본존과 문수보살의 광배는 각각 3매의 판목을, 보현보살의 광배는 4매의 판목을 각 연결 부분마다 무쇠 못으로 고정시켜 틀에 끼웠다. 화려한 화염문이 광배의 가장자리를 두르고, 광배 내부에는 여섯 송이의 연화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조각하였으며, 따로 제작한 작은 화불(化佛)을 광배에 끼워 입체감이 잘 나타난다. 석가불의 광배는 3구의 화불을 배치한 반면, 협시 보살상의 광배에는 2구의 화불과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상 1구씩을 배치하였다.
흥국사 대웅보전 목조삼존불좌상은 조성발원문이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조성시기와 봉안 사찰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착의법(着衣法) 등에서 조각승 상정이 1755년(영조 31)에 제작한 양주 회암사 봉안 목조불좌상이나 부천 석왕사 목조보살좌상과 동일하여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흥국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목조삼존불좌상은 18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 상정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가장 화려한 광배를 가진 불상으로 작품성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