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 ( )

목차
관련 정보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 / 결송류취보 권수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 / 결송류취보 권수
조선시대사
문헌
국가유산
경상북도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후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浦項 陜川李氏 典書公派 所藏 遺物)
분류
기록유산/전적류/전적류/전적류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09년 08월 31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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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후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개설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은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이응표(李應彪, 1555~1611)에게 발급한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을 비롯하여 후손의 교지, 유서, 호구단자 등의 고문서 일괄이다. 1604년(선조 37) 녹권을 발급할 당시 녹권 수령자 수만큼 매우 많이 발급했지만, 전래본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 문서는 희소성의 가치가 인정되어 2009년 8월 31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내용

주된 문서는 이응표에게 발급한 선무원종공신녹권과 관직을 임명한 교지이다. 임진왜란 중에 국가에서는 각 방면에서 공을 세운 관원에 대해 1604년(선조 37)에 호성공신(扈聖功臣)과 선무공신(宣武功臣)을 책봉하였다. 임진왜란을 당해 의주까지 왕을 호종한 공신에게는 호성공신, 전투에 참가한 사람뿐만 아니라 원병과 양곡을 요청하기 위해 명에 왕래하거나 군수품을 제공하거나 수송하는데 공을 세운 공신은 선무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이들 공신의 책록은 공신도감에서 왕명을 받아 수행했다.

선무공신의 정공신은 양반 관료 중심으로 18명뿐이지만, 나름대로 공로가 있는 인물은 한 등급 낮은 원종공신을 책봉했는데, 왕실 종친부터 천민들까지 포함되어 무려 9,060명에 달했다. 원종공신은 수가 많다 보니 내용도 많아 부피도 크고 인쇄한 부수도 많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공신도감자로 인쇄해서 선장본으로 제책한 책자본의 형태이다. 권두에 ‘선무원종공신녹권’이라는 문서의 명칭이 있고, 이어 문서를 발급받는 해당 공신의 신분과 성명이 기재되어 있다. 다음으로 1605년(선조 38) 4월 선조가 도승지 신흠(申欽)을 통해 공신도감에 내린 선무원종공신 녹훈의 전지(傳旨)가 실려 있다. 이어 유공자의 성명 · 관직 · 공적 사항 등이 모두 나열되어 있다. 96장부터 서구와 하부에 손상이 있어 필사하여 보충한 부분이 있다.

이 녹권은 2등에 책록된 수사(水使) 이응표에게 내린 것이다. 이응표는 1580년(선조 13) 별시 무과에 25세로 급제하였고, 무산진 만호(茂山鎭萬戶)를 거쳐, 1583년(선조 16)에서 1597년(선조 30)까지 완도를 관할하는 가리포(加里浦)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으면서 각종 해전에서 많은 전공을 세워, 『난중일기(亂中日記)』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이후 영양 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 선산 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 전라우도(全羅右道)와 경상우도(慶尙右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이응표 교지는 1599년(선조 32) 2월 14일 밀양 도호부사, 동년 2월 22일 선산 도호부사, 1601년(선조 34) 2월 16일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를 임명한 때의 교지이다. 유서(諭書)는 1604년(선조 37) 2월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될 당시 이응표에게 내린 것이다. 아들 이형(李泂)의 교첩은 1609년(선조 42) 8월 13일, 창신교위(彰信校尉), 동년 9월 11일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임명한 때의 교첩이다. 호구단자는 1750년(영조 26) 이명식(李明烒, 72세), 1879년(고종 16) 이기근(李耆根, 69세), 1894년(고종 31) 이기근(李耆根, 85세) 등 후손의 호구단자이다.

의의와 평가

「선무원종공신녹권」은 병자호란 이전의 간본이다.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인물에 대한 시상의 내역에 있어 정공신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많은 원종공신을 책봉하고 혜택을 주었던 것은 전후의 난국을 수습하고 사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임진왜란의 전쟁 양상과 전후 수습책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이응표 부자의 교지, 유서 등의 고문서는 개별적인 가치보다 선무원종공신녹권과 관련해서 해당 시대의 사회경제적 이면상을 이해하는데 자료적 가치가 있어 일괄 지정된 것이다.

참고문헌

「선무원종공신녹권에 관한 서지적 연구」(임기영,『영남학』21권. 2012)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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