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은 경상북도 포항 합천 이씨 전서공파 후손가에 소장된 종가 문서이다. 이응표에게 발급한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하여 관직 임명 교지, 유서, 호구단자 등의 일괄 고문서이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녹권 수령자가 많아 매우 많이 발급되었는데 전래본이 많지 않아서 그 가치가 크다. 이응표는 임진왜란 중에 가리포 첨사를 역임하며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이후 그는 밀양 도호부사, 선산 도호부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내린 교지도 남아있다.
정의
경상북도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후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개설
내용
선무공신의 정공신은 양반 관료 중심으로 18명뿐이지만, 나름대로 공로가 있는 인물은 한 등급 낮은 원종공신을 책봉했는데, 왕실 종친부터 천민들까지 포함되어 무려 9,060명에 달했다. 원종공신은 수가 많다 보니 내용도 많아 부피도 크고 인쇄한 부수도 많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공신도감자로 인쇄해서 선장본으로 제책한 책자본의 형태이다. 권두에 ‘선무원종공신녹권’이라는 문서의 명칭이 있고, 이어 문서를 발급받는 해당 공신의 신분과 성명이 기재되어 있다. 다음으로 1605년(선조 38) 4월 선조가 도승지 신흠(申欽)을 통해 공신도감에 내린 선무원종공신 녹훈의 전지(傳旨)가 실려 있다. 이어 유공자의 성명 · 관직 · 공적 사항 등이 모두 나열되어 있다. 96장부터 서구와 하부에 손상이 있어 필사하여 보충한 부분이 있다.
이 녹권은 2등에 책록된 수사(水使: 수군절도사) 이응표에게 내린 것이다. 이응표는 1580년(선조 13) 별시 무과에 25세로 급제하였고, 무산진 만호(茂山鎭萬戶)를 거쳐, 1583년(선조 16)에서 1597년(선조 30)까지 완도를 관할하는 가리포(加里浦)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으면서 각종 해전에서 많은 전공을 세워, 『난중일기(亂中日記)』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이후 밀양 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 선산 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 전라우도(全羅右道)와 경상우도(慶尙右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이응표 교지는 1599년(선조 32) 2월 14일 밀양 도호부사, 동년 2월 22일 선산 도호부사, 1601년(선조 34) 2월 16일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를 임명한 때의 교지이다. 유서(諭書)는 1604년(선조 37) 2월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될 당시 이응표에게 내린 것이다. 아들 이형(李泂)의 교첩은 1609년(선조 42) 8월 13일, 창신교위(彰信校尉), 동년 9월 11일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임명한 때의 교첩이다. 호구단자는 1750년(영조 26) 이명식(李明烒, 72세), 1879년(고종 16) 이기근(李耆根, 69세), 1894년(고종 31) 이기근(李耆根, 85세) 등 후손의 호구단자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선무원종공신녹권에 관한 서지적 연구」(임기영,『영남학』21권. 2012)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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