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석조보살좌상은 높이 59.5㎝, 무릎 너비 37.3㎝. 보살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688년(숙종 14) 조각승 충옥(忠玉), 극신(剋信), 초변(楚卞), 진기(進機), 혜민(惠敏), 각초(覺楚), 도견(道見)이 경상남도 밀양 자씨산 형원사(瑩原寺)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석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 59.5㎝의 중형 보살상으로, 전체가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손상된 부분은 거의 없다. 무릎 폭이 좁고 상체도 짧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왜소한 인상이다. 몸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고, 뺨과 턱에는 양감이 나타나 있으며, 코는 이마로부터 돌출한 특징이 보인다. 옷은 조선 후기 일반적인 보살상처럼 매우 두꺼운 군의, 승기지, 부견의, 대의를 착용하였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지만, 보살의 존명을 알려줄 지표는 없다.
두 손으로 지은 수인은 매우 독특하다. 양손 모두중지와 약지가 장심을 향해 구부리고 있으며, 왼손은 손등을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도록 하였다. 이 같은 수인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특정 존상의 수인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불, 아미타불, 미륵보살 등 존명에 상관없이 같은 수인이 채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인은 존상보다 재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석조보살좌상을 조성한 충옥이 1690년(숙종 16)에 만든 전남 곡성 도림사의 목조지장보살좌상, 1694년(숙종 20)에 만든 경남 함양 용추사 목조지장보살좌상, 1705년(숙종 31)에 만든 경남 의령 백련암 목조 대세지보살 좌상 등 목조상에서는 팔과 손을 위로 들고 있는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석상에서 손을 대퇴부 바로 위에 붙여서 만드는 이유는 불상에 소용되는 석재를 아끼고, 파손의 위험도 줄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 같은 손 모양은 석조각 전문가인 승호파 조각승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양산포교당 석조관음보살좌상은 충옥만의 독창적인 얼굴 모습과 조각 수법 등이 뛰어난 17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관음보살상은 1688년이라는 제작 시기와 17세기 후반의 대표적 조각승 충옥이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와 조각승 출옥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