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지장보살상은 해인사 희랑대에 봉안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불상의 바닥에 붉은색 글씨로 적은 조성기에 의하면, 1677년에 불영산(佛靈山) 쌍계사(雙溪寺) 법당의 삼존불상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조성하여 인동(仁洞)의 가섭암(迦葉菴)에 봉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상을 모셔온 인동 지역은 현재 칠곡 근처이며, 시주자는 장□익(張□翊)으로 이 지역에 살았던 인동 장씨에 의해 지장상이 발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을 제작한 조각승은 자규와 윤□이다. 조각승 자규는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으로, 1665년에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상과 1670년에 김천 고방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조성할 때 승일(勝一)의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한 바 있고, 1677년에 함양 상련대 목조관음보살좌상 중수에도 참여하였다.
이 보살상은 최근에 만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은 민머리형의 지장보살상이다. 둥글 넓적한 방형의 얼굴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여 귀여운 동자상을 연상시킨다. 특히 부드럽고 고요하게 모델링 된 이목구비를 통해 지옥 중생을 위해 사유하는 지장보살상의 모습을 적절하게 구현하였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으나, 17세기 불상에 비해 허리는 짧고 무릎이 높아져 일단의 양식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어깨와 무릎 폭이 적당하여 균형 잡힌 비례를 보이지만, 상의 규모에 비해 두 손이 크게 조성되어 다소 어색함을 준다. 수인은 오른손은 가슴 앞에, 왼손은 무릎 위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었고, 지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착의는 이중 착의로 걸쳐 입었고, 복부에는 두 장의 불의가 ‘W’자 모양으로 교차하여 왼쪽 어깨 뒤로 넘겼다. 뒷면은 왼쪽 어깨로 흘러내린 대의 자락을 날카로운 잎 모양으로 처리하였다. 약간 도출된 가슴 아래로는 비스듬히 접은 수평의 승각기 자락이 표현되었으며, 무릎에는 넓은 띠 모양의 ‘八’자 모양의 주름을 중심으로 그 좌우 힘 있는 호선의 주름이 대칭적으로 펼쳐져 있다.
희랑대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바닥에 붉은 글씨로 기록한 조성기를 통하여 정확한 제작 연대, 제작지, 존상 명칭, 봉안 사찰, 조성에 참여한 조각가 및 시주자 등이 확실하게 밝혀져 있는 조선후기 불교조각의 기준 자료이며, 17세기 후반기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조각승 자규의 조각 경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