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용탑선원의 입구 쪽에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승탑과 탑비가 나란히 있으며, 먼지로 인해 표면이 약간 변색되어 있지만 전반적인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용성선사(龍城禪師, 1864∼1940)는 16세에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3 · 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이로 인해 3년간 감옥생활을 하였으며, 이후로도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불경을 국문으로 번역하는 활동을 했다. 200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용성선사 부도〔승탑〕는 외형이 탑에 가깝다. 이중 기단 위에 탑신을 3개 얹은 방형 평면의 3층탑 형태로, 상하 기단에는 우주와 각 면에 각각 1주씩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아래층 기단 위에는 위층 기단 받침이 몰딩되어 있고, 위층 기단 위에는 탑신 받침이 있다. 탑신과 옥개(屋蓋)는 각각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옥개는 낙수면이 두껍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며 층급받침은 5단이다. 상륜부는 노반(露盤; 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 탑의 노반 위에,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처럼 만든 부분)을 두었다.
탑비는 이중으로 마련된 지대석 위에 귀부(龜趺), 비신, 이수(螭首)를 올려놓았다. 귀부는 웅크린 채 네 다리에 힘을 주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윗면에는 귀갑무늬가 새겨져 있고 하단에 당초문대를 돌렸다. 귀부 가운데 마련되어 있는 방형비좌는 가장자리가 중엽 연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수는 반룡 2마리가 마주 보고 있으며 비신에는 용성선사의 생몰년과 업적 등이 적혀 있는데, 비신의 우측면에는 “용운근 찬(龍雲謹 撰) 오세창 전(吳世昌 篆)”이라 되어 있어 한용운이 비문을 짓고, 비신의 두전을 오세창이 썼음을 알 수 있다.
용성선사 부도는 고려시대의 강원도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1388년) 2기 외에는 없는 희소한 형식의 불탑형 부도〔승탑〕이다. 비슷한 높이의 이중기단이나 3층의 탑신 형식 등은 해인사에 경내의 길상탑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것이지만 조선시대의 전통을 잘 계승하는 조각 형태와 수법을 갖추고 있다. 용성선사와 함께 삼일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대표자들 중에 포함되었던 한용운 선생이 비문을 짓고, 오세창 선생이 탑비의 두전(頭篆)을 하였다는 점은 용성선사가 근대 역사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기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독립투사 3인이 이루어낸 역사적인 산물로써의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