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해 온 자들을 가리키는 역사용어. 한반도귀화인·한반도이주민.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과 현황
①은 주로 야요이시대(彌生時代)에 해당하며 초보적인 관개기술과 벼농사의 기술을 가지고 주로 기내(畿內: 오사카와 교토 나라 등의 수도권지역)와 규슈(九州) 지역에 정착하였다.
②는 오진조(應神朝)에 해당하며 마을과 부족 단위의 집단을 형성하여 건너왔다. 대표적으로 백제계의 야마토아야씨(東漢氏)의 조상인 아치노오미(阿知使主), 신라계의 하타씨(秦氏)의 조상인 유즈키노키미(弓月君) 등이 자신의 부족들을 이끌고 건너온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들은 농경·토목 외에, 양잠·제철·건축·토기제조와 그 외의 수공업 등, 당시의 선진기술을 가지고 건너왔다. 일종의 기술자집단의 집단이주이다. 기술뿐만 아니라 백제의 학자인 아직기와 왕인도 이 시기에 일본에 건너와 학문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③은 6세기 중엽 긴메이조(欽明朝)가 중심이다. 이 시기는 국가 간의 인적교류가 성행하고 기술자의 도래도 계속되었다. 이 시기는 백제로부터 유학 지식을 가진 오경박사를 비롯하여 음양도와 역(曆)에 능통한 자들도 왔다. 그들은 한문을 사용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외교교섭을 행하는 실무자가 되었다. 그들의 두뇌를 통하여 일본의 문명과 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이것이 곧 아스카(飛鳥)문화로 개화한다. 호류지(法隆寺)를 비롯한 일련의 국가사업이라고 할 만한 사찰과 불상의 건립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의 손에 의해 실현되었다.
④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 두 나라에서 망명자가 연이어 도래해 온 7세기 후반 이후로서 덴지조(天智朝)에 해당한다. 마침 율령국가의 형성기였던 당시 조정은 한반도도래인을 중용하여 고급관인과 기술자를 중앙의 관직에 등용했다. 663년 백촌강(白村江) 패전 이후 신라와 당의 공격을 두려워한 일본은 각지에 도래인들의 축성 기술을 이용하여 조선식 산성을 구축하였다. 문관에는 백제계의 기시츠 슈시(鬼室集斯)는 학두직(學頭職)으로서 문교행정의 최고직에 올랐다. 사타쿠 쇼묘(沙宅紹明)는 법관대보(法官大輔)로서 입법 작업을 도왔다. 또한 도래인 중에는 덴무(天武)·지토조(持統朝)의 시의가 되거나, 당시 역사편찬 작업에도 참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日本古代史事典』 (阿部猛編, 朝倉書店, 2005)
- 『歸化人』(上田正昭, 中公新書, 1962).
- 『京都渡來文化』(仲尾宏, 淡交社, 1990).
- 『古代日本と渡來人』(井上滿郞, 明石書店,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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