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9일 미군이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으로 27만 명 가량이 피폭을 당하고 7만 여명이 사망한 가운데, 조선인 2만 명 정도도 피해를 입었고 그 중에 약 1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생존자 1만 명 가운데 귀국자가 8천 명, 잔류자가 2천 명 정도 되는 것으로 보았다.
1967년 한국에서 ‘원폭피해자협회’가 결성된 후 지속적으로 일본정부에 대해 생존자의 치료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가운데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위령비 건립을 제기했으며, 일본인들이 모금운동에 돌입하여 50만 엔을 조성하고, 1979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 중심지점 부근에 추도비를 세웠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1957년 원폭의료법이 시행되어 일본 거주 피폭자에 대한 치료 지원을 시작했으나 일본을 벗어난 피폭자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1975년에 나가사키에서는 의료조사단이 결성되어 한국을 방문하여 피해자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1979년에 들어서는 한국과 일본정부 사이의 교섭에 따라 한국인 피폭자의 도일 치료가 가능해졌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에서 한국인 피폭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가사키에서도 위령비 건립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979년 8월 9일에 추도비 제막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추도비 전면에는 ‘추도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1945. 8. 9’라고 새겨져 있다.
검은 대리석의 석비에 노란 글씨가 대조적이다. 이 추도비의 특징으로 일본인들만의 모금으로 세워진 것을 들 수 있다.
매년 거행되고 있는 나가사키 원폭 추도회에 맞추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도 일본의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추도회가 열리고 있다. 일본의 과거 전쟁을 반성하고 무고한 조선인 희생자를 추도하는 시설이 되고 있다.